아주경제 (영국/리버풀)임의택 기자 =자동차 담당기자의 특권 중 하나는 전 세계에서 나오는 신차를 미리 타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들이 모는 경주차를 동승해볼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월드랠리챔피언십(WRC) 경주차를 경험하는 건 사실상 일생에서 단 한 번 있을 법한 일이다. 그 흔치 않은 기회가 지난 16일 영국 리버풀에서 주어졌다.
체험에 앞서 실제 레이싱 드라이버들과 똑같이 레이싱 수트와 헬멧, 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배가 나온 기자가 입으니 레이싱 수트가 정비복처럼 보인다는 게 달라 보일 뿐이다.
공차 중량 1200㎏인 이 차의 최고출력은 무려 300마력. 가벼운 차체에 1.6ℓ 직분사 터보 엔진을 얹었으니 슈퍼카 부럽지 않은 파워를 자랑한다. 그러나 도로조건이 험난한 랠리의 특성상 이 파워를 다루지 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티에리 누빌은 긴장한 동승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180도의 헤어핀 코스를 드리프트로 질주한다. 진흙길이니 미끄러뜨리긴 쉽겠지만 문제는 코스대로 제어하는 것. 티에리 누빌은 코너 진입 전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 차체 뒤를 미끄러뜨리고 스티어링 휠을 반대로 꺾는 드리프트의 정석을 보여준다. 세계 정상급 드라이버다운 솜씨다.
이 매끄러운 주행은 i20 WRC 경주차의 완성도가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FIA 규정에 맞춰 멀티 포인트 롤 케이지와 합성섬유 차체를 갖춘 경주차는 양산형 i20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강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조절식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과 브렘보 디스크, 4피스톤 캘리퍼가 더해져 탄탄하고 안정된 주행성능을 보여준다. 타이어는 미쉐린 제품이다.
현대차는 WRC 경주차를 통해 고출력 엔진과 고강성 차체, 저중심 설계, 공력 기술 노하우를 얻었다. 7000~8500rpm의 높은 부하로 운행되는 만큼 실린더 블록 강성과 엔진 냉각 성능, 실린더 헤드와 개스킷의 강성이 모두 보강되어야 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이다. 게다가 비포장 길을 달리다 수시로 점프와 착지를 반복해야 하는 만큼 높은 차체 강성도 요구된다. i20 WRC 경주차의 경우 양산형 i20에 비해 비틀림 강성은 3배 이상, 섀시의 횡 강성은 5배 이상으로 설계됐다. 무게 중심 또한 일반형보다 100㎜ 이상 낮다.
WRC를 통해 얻어진 고성능차 기술은 남양연구소와 유럽기술연구소가 협업해 고성능차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현대차는 이러한 기술을 향후 ‘현대’와 ‘제네시스’의 고성능 브랜드 ‘N’에 적용할 예정이다. BMW M 연구소장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의 합류가 N 브랜드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