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이 '비운의 지도자'로 불리는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일 각종 추모 및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중국공산당의 간부 양성기관인 중앙당교 신문사가 지난 16일 '후야오방 동지와 이론동태-후야오방 동지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를 연 데 이어 중공중앙(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문헌편집위원회가 전날 인민출판사를 통해 '후야오방 문선'을 출간했다.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는 "'후야오방 문선'에는 후야오방 동지가 1952년 5월부터 1986년 10월 사이에 썼던 중요 저작 77편이 담겨 있다"며 "이 책은 전국 적으로 출판된다"고 전했다.
후야오방의 공적을 평가하는 언론들의 사설, 기사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중국 최대의 뉴스포털 중 하나인 소후(搜狐)는 전날 후야오방의 삶을 추모하는 사설을 게재하고 "(그의) 개혁의 초심을 그리워한다"고 밝혔다. 보수성향의 관영신문인 환구시보(環球時報)도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이틀 앞둔 18일 '역사의 흐름이 후야오방에 대한 경의감을 부여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특히 중국정부는 이날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차원의 추모 행사로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홍콩의 일부 매체들은 이번 행사가 '당·국가의 핵심 지도자들의 탄생 100주년 행사'에 해당하는 '기념대회' 형식으로 열린다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당지도부가 대거 참석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 현대사에서 후야오방은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함께 '비운의 총서기'로 불린다. 그는 1987년 공산권 몰락 위기 속에서 발생한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축출됐다. 당국은 당시 후 전 총서기가 자산계급 자유화를 용인하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고 평가했다.
그가 1989년 4월 15일 사망하면서 톈안먼 사태가 촉발됐다. 사후에도 "당을 배척했다"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그는 같은 공청단 계열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체제가 들어선 2000년대에 들어서야 서서히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5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 전 총서기 탄생 90주년 기념식에는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와 쩡칭훙(曾慶紅) 당시 국가 부주석이 참석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복권조치가 끝났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유족 측은 과거 후야오방에 대한 정치적 결정은 당중앙의 문건을 통해 이뤄진 만큼 그에 준하는 복권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당중앙을 대표하는 시 주석이 이날 후야오방의 탄생 기념식에 참석할 경우 '공식복권'으로 해석할 여지가 적지 않지만, 후야오방은 톈안먼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인물인 만큼 시 주석이 직접 참석하지는 않을 거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중국정부는 여전히 톈안먼 사건을 '폭란', '풍파'로 지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