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한아람 기자 = 1983년, 삼성전자가 경기도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고 터를 닦는 공사를 진행할 때였다.
이 곳에서 잔줄무늬 청동거울(다뉴세문경) 형틀 공장이 발견됐다. 2500년전에 만들어진 다뉴세문경은 직경 21cm에 동심원이 1만3300개나 그려져 있었다. 선의 굵기와 간격은 마이크론 단위인데 이미 그 시절에 마이크론 단위를, 구리에다 그린 게 아니라 모래로 형태를 만들고 모래에다 그림을 그려 동(銅)을 주물에 부어 만들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은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하거나, 일부 제품은 이를 넘어설만큼 독보적인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가장 오랜기간 동안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 인텔이 세계 최초로 1kbit D램(RAM) 반도체 ‘1103’을 발명한 이후, 미국은 초기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일본 업체에게 밀리며 1985년 D램을 발명한 인텔이 사업을 포기,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만 남게 된다.
1983년 2월8일 일본에 머무르며 장고를 거듭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D램 반도체 사업진출을 공식화했다. 당시 일본 D램 산업은 기술과 품질, 생산면에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찍이 앞서가고 있었다.
그랬던 한국이 1992년 64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처음으로 일본을 꺾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일본 업체들이 10여년만에 미국을 제쳤듯이 한국도 10년만에 일본의 무릎을 꿇린 것이다.
2년 뒤인 1994년 9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256메가D램 개발을 공개하면서 구한말 태극기를 커다랗게 내건 광고를 했다. 세계 첨단을 걷는다는 반도체 산업에서 마침내 ‘극일(克日)’을 이뤄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어 한국, 삼성전자는 1992년 이후 D램 시장 1위 자리를 23년째 지키고 있다.
영광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기간을 되돌아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의 발전 과정은 장애물 경주와 같았다.
절벽을 기어올라가면 강물이 나왔고, 강을 건너면 낭떠러지였다. 우리가 직접 반도체를 만들지 못했던 시절에는 외국에서 반도체를 단 한개 구입할 때도 어디에 쓸 건지 용도를 말해야할 정도였고, 일정 개수 이상은 살수도 없었다. 기술유출 우려 때문이었다.
기술없는 서러움은 반도체 사업에 착수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반도체 사업의 부진을 경험부족이라고 판단한 이병철 선대회장이 삼성보다 훨씬 앞서 반도체사업을 해 온 A사의 B회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사례는 유명하다.
또 1983년 삼성은 본격적인 D램 산업 진출을 결정하고 일본 샤프에 반도체 ‘신사유람단’을 파견했다. 당시 샤프는 일본에서는 2류 반도체 업체에 불과했다. 삼성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갔지만, 그들은 한낱 기술연수생의 일환으로 일본 고졸 엔지니어를 사수로 모시며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신사유람단 단장으로 참가했던 이윤우 삼성전자 고문은 “어깨 너머로 생산라인을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구박을 받아가며 엔지니어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뿐, 소득도 별무일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국 마이크론에 연수를 갔던 우리 연구원들도 라인을 보지도 못한 채 공장 잔디밭에 잡초만 뜯을 만큼 굴욕을 겪어야 했다.
기술 얻기가 어렵자 그룹 총수가 직접 나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쟁사의 덤핑 공세, 특허 제소에 이어 국가간 통상분쟁까지 확산돼 세계무역기구(WTO) 재판으로까지가는 참담한 경험을 극복하고 현재의 반도체 한국을 이뤄낸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은 디스플레이 시장 1위로 이어졌으며, 비교열위에 있던 비메모리 반도체 성장의 자양분을 제공했다. 그동안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우리 산업이 세계 1위로 시장을 창출하고 리드한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돼 TV와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기술(ICT), 백색가전, 전자부품 등에서도 연이어 세계 1위로 도약했다.
삼성전자측은 “반도체 산업의 성공 비결은 △바위로 계란치기 수준의 도전정신 △망할 수 있다는 각오로 하는 위험관리 △남보다 한발 빠른 기술개발 및 인재양성 △사업의 판을 빠르게 판단하는 스피드 △상시적인 위기의식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이는 생존의 기로에선 모든 우리 산업계에 필요한 자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