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플까가 두려워
더 아파했던 날이면
기차를 타고 이 도시 어디쯤서
한번은 무너지고 싶었다.
봄꽃 피고 단풍 드는 가을길에서도
언제나 한길 눈 내릴 것 같은 뒷골목
고원의 눈바람을 등지고 앉아
연탄불 위 돼지비계를 뒤집어
빈 속에 영하의 소주를 마시다
눈에 갇힌 골목 지하 막장에서
먹먹해진 가슴 밤은 깊어가고
너를 위한 육자배기라도 질펀히 부를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라도 불러볼까
고래고래 빈소리라도 지르다
분명 한번은 꼭 무너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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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 속에서도 금방 펑펑 눈이 내릴 것 같은 도시. 고원의 찬바람이 부는 골목에는 연탄을 캐는 이방인들이 난롯가에 모여 앉아 소주를 마시다 취해 질펀히 제 고향 육자배기를 부르다 제 흥에 겹든, 아니면 한 많은 인생의 서러움, 혹은 누군가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원망이든, 그 어떤 이유 하나씩으로 옆 사람과 시비가 붙고, 또는 욕지거리를 하다 취한 채 탄을 깨러 막장으로 가고 또는 마을을 떠나고… 아직도 그렇게 사람들이 살 것 같은 도시. 그래서 이곳에서는 한번쯤은 나도 꼭 그런 모습으로 무너질 것 같아, 돌아서만 다니던 길이었는데… 어느 밤길에서 태백역을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