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이수경(정리) 기자 =역시 '미스터(Mr) 쓴소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통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4선·대구 수성갑)은 인터뷰 내내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한국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고 단언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징후가 엿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령화 저출산'으로 성장잠재력의 하락 △비효율적 국가 시스템으로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의 감소 △무형자산인 신뢰도 저하 등을 문제로 꼽았다. 하지만 위기의식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여야 정치권도, 심지어 경제연구소나 한국은행조차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2월 "경제해법 찾기에 '올인'하겠다"며 20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4선 중진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심정이 궁금하다. 4선 중진이 본 여의도 정치는 어땠는지, 소회도 함께 말해달라.
-그간 수차례 한국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중국발(發) 리스크 등 세계 경제뿐 아니라 내수 부진 등의 내부 구조도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다. 국가경영을 리드하는 정치판이 엉망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치판이 많은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내리 4선을 했는데, (국회가) 갈수록 엉망이다. 18대는 '동물국회', 19대는 '식물국회'라고 비판하지 않나. 정치판이 나라 걱정을 안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한국 정치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미래 지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책임감도 전문성도 없다. 또 과거에만 매몰돼 있다. 국가전략을 리드할 능력도 없고, 최소한의 서포트할 능력도 떨어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빈부의 격차, 사회적 갈등에 직면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권이 생활정치와 연결돼야 한다. 하지만 그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 정치권이 환경변화에 대한 대비는 고사하고 대처도 못 하고 있다. 참으로 걱정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유럽, 중국, 신흥국 위기론까지 일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부진→소비 감소→기업투자 위축' 등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기에 빠졌다. 당분간 침체기는 지속될 것이다. 침체기가 끝나면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무리한) 여러 수단을 동원하면, 기업 입장에선 (어려운 상황이) 몇 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향후 '15∼20년간'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거다. 문제는 한국 경제다. 지정학적으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세계 경제가 나빠지면 산업도 금융도 대책이 없다. 또한 '고령화·저출산'으로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구조도 마찬가지다. 산업구조의 노후화로 (각 기업의) 주력 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든다. 국가 시스템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총요소생산성이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무형자산인 신뢰도는 어떤가. 국가 운영체계의 3박자가 모두 위기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징후는 없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다. 과거엔 1%포인트 하락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이제는 절반인 5년으로 줄었다. 앞으로도 더 빨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경환 경제팀'은 확장적 재정지출 등을 처방책으로 내놨지만, 시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기울어져 가는 경제 베이스를 교정하기 위한 수단은 3가지다. 첫 번째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총수요관리정책(재정확대)이다. 두 번째는 생산요소시장에서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비용과 거래비용을 줄여나가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공급정책(신자유주의), 마지막으로는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창조적 파괴, 즉 경제혁신이다. 첫 번째는 단기대책,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중장기적 대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기 대책만 되풀이하고 있다. 단기 대책이란 게 뭐냐. 현세대가 미래 세대의 수요를 앞당겨 쓰는 거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얘기다. 빌리는 것도 한두 번 빌려야지, 상습적으로 빌리면 되겠느냐. 단기 부양책이 더는 효과가 없으니까 4대 부문(공공·노동·금융·교육) 구조개혁이나 창조경제를 하자는 건데, 전혀 진도는 안 나가고…."
-진도가 안 나가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때문에 그렇지. 이 사람들은 말로만 진보지, 진보는 무슨 진보야. 개혁과 창조를 반대하는 사람이 무슨 진보라고…. 정부는 제대로 하고 있느냐, 안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게 문제다. 정부도 여당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4개 개혁의 핵심은 '자유롭게 공정한 생산요소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4대 개혁에 손을 못 대는 한 다른 정책을 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선 투자 의욕이 생기겠나. 이미 일본에서 검증된 현상이다."
-일본에서 검증된 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지난 25년간 일본에선 '정치권의 무능', '관료사회의 무사안일', '자기 이익만 챙기는 관료사회' 등의 현상이 벌어졌다. 호송선단식(낙오자 없이 끌고 가는) 국가경영의 부작용이 터진 거다. 국제환경이 변하면 체제도 변해야 하는데, 현상 유지만 한 셈이다. (그 기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딱 1%(평균)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래도 일본은 개개인이 유능해서 그 정도지, 우리 같았으면 그대로 가라앉았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5년'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인가.
"정치는 무능하고, 행정은 무사안일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엔고를 단행한 일본은 이후 그것을 막기 위해 자금을 풀고 재정을 확대했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1990년대 초 투자 부진이 일본의 내수 침체를 이끌었고, 90년대 중반 이후엔 소비 부진이 이를 이어받았다. (그 결과) 내수 증가율은 둔화됐다. GDP 대비 내수 비중도 하락했다."
-일본이 개혁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일본도 지난 25년간 몇 차례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거의 실패했다. 1990년대도 그랬다. 당시 수상 평균 재임 기간이 1년이 채 안 됐다. 새로운 수상들이 나올 때마다 개혁을 외쳤다. 그런데 잘 안 됐다. (정치인이나 국민들이) 정신을 못 차려서 그렇다. 사회 전반이 정신을 안 차리니까, 독하게 마음먹고 실천을 못 했던 거지…. 그래도 실천 좀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딱 두 사람 있다. 1994년부터 2년간 총리했던 하시모토 류타로, 2002∼2006년까지 한 고이즈미 준이치다. 하시모토는 금융산업, 고이즈미는 공기업(우정사업)을 개혁했다. 잘하다가 두 사람이 그만두니까, '도로아미타불'이 된 거야."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구조개혁이나 창조경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구조개혁 없는 경기부양, 공급 부분의 개혁 없는 총수요 확대 정책으로는 안 된다. 일본의 길을 가지 않기 위해 4대 부문 개혁을 통해 한계기업을 정리하면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창조경제로 미래 신성장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전혀 안 되고 있다. 정치권이나 국민이나 정신을 못 차려서 그렇다. 위기의식이 없어. 우리 사회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창조경제의 모호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공부를 안 해서 그래…. 자기들이 공부를 안 하고 가르쳐 달라고만 하면 어떻게 하나. 창조경제가 아니면 우리가 살 길이 없다. 그렇다면 창조경제가 뭐냐, 혁신이다. 어떤 혁신이냐, 기술 혁신과 시스템 혁신이다. 창조경제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 창조행정의 대표적인 게 정부3.0, 창조금융은 금융혁신, 창조산업은 융·복합 기술산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창작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회 전반이 창조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또 다른 대외변수로 중국과 미국 경제를 꼽는다.
"중국에 대해선 비관론을, 미국에 대해선 너무 낙관론을 얘기한다. 중국은 3년 전부터 산업 구조조정을 얘기했다. 산업을 고부가가치로 바꾸고 성장률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투자보다는 소비, 수출보다는 내수 위주로 가겠다고 했다. 또 외국 자본을 유입하기 위해 자본시장 확대에 나섰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다. 떨어져야 구조조정을 하지…. 미국은 이번에 금리인상하면 자국이 살판나는 줄 아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은 세계 시장에 나가 있는 자금을 끌어다가 경제를 운영해보겠다는 작전이다. 국가부채가 18조 달러다.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가도 이자만 1800억원이 증가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과잉부채, 유동성 초과공급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냐. 미국은 지금도 쌍둥이 적자가 엄청나다. 지나친 낙관론은 안 된다. 결국 국민이, 정치권이, 사회 전반이 변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시원치 않으면 대책이 없다. 집단지성으로 대처하는 사회만 살아남는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 정리=최신형·이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