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벽지의 낙서, 숨겨진 책갈피…연기백의 '곁집'

2015-10-2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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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아트스페이스 2015 국내작가 기획전

연기백, '물 이용 방식 세 번째', 2015 [사진=송은아트스페이스]


아주경제 조가연 기자 =서울 강남구 송은 아트스페이스가 2015 국내 작가 기획전으로 연기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안두진, 2012년 천성명, 2013년 이세경에 이어 네 번째로 열린 한국 작가 개인전이다.

연기백 작가는 일상 속 사물과 공간에 주목하고 주변에 버려진 집의 물건과 낙서, 벽지 등을 수집해 그 안에 축적된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되짚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곁집'이란 주제의 이번 전시 역시 지역과 건물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생된 삶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곁집'은 주로 기존 건물에 덧붙여 지어진 집이나 구조물을 뜻한다. 개인의 필요나 환경에 따라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는 곁집은 이번 전시에선 '본체에 의지하는 장치', '현대사회 이면에 숨겨진 가치' 등으로 재해석됐다.

전시장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빗물받이를 천장에 매단 작품 '물 이용 방식 세 번째'를 만나게 된다. 지붕의 빗물을 모아 배수를 돕는 빗물받이는 근대화 시기를 거치며 확산된 구조로 추녀가 긴 우리식 한옥에는 굳이 필요 없는 '곁집'이다. 함석지붕 위로 떨어지며 전시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빗소리는 한 세대를 풍미하던 녹슨 곁집에 얽힌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 기억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연기백, '낙엽이 달을 부수다(부분)',2015 [사진=송은아트스페이스]


두 개의 전시장에 나눠 전시된 '낙엽이 달을 부수다'는 낙서에 대한 고찰이다. 첫 번째 전시실엔 작가가 오래된 벽지와 길거리 벽에서 본을 뜬 낙서들을 폐기된 장판에 붙인 작품이 전시됐다. 통로를 지나 두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어두운 불빛 아래 낙서를 붙인 장판들이 깔렸다. 버려진 메모, 철거를 앞둔 건물 외벽, 오래된 숙소의 벽지, 빈집의 합판 등에 남겨진 수많은 익명의 낙서는 우리 삶을 장식하는 '곁집'으로 해석된다.

2013년부터 이어진 장기 도배 프로젝트 '교남 55+가리봉 137'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겹으로 도배된 벽지 층을 직접 뜯어내 그 안의 낙서와 흔적들을 살피는 작업이다. 작가는 건물 가장 안쪽에 붙여지는 벽지를 통해 그 안에 배어있는 개인의 삶을 고찰한다.
 

연기백, '곁집 52-106 열 번째 장소', 2015 [사진=송은아트스페이스]


2009년에 시작된 또 다른 장기 프로젝트 '곁집 : 52 - 106 열 번째 장소'는 잉여 공간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여기저기 무작위로 책갈피를 꽃아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우연히 책갈피를 발견한 이들은 작가가 있는 구조물로 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작가가 근무하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시작돼 소마미술관 올림픽공원 잔디밭, 울산대학교 박물관, 금천예술공장 외벽 등에서 이어져 왔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의 작업을 기록한 영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도 상영되고 있다.

연기백의 작업은 퇴색되고 사라져 가는 일상 속 사소한 물건과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것과 같다. 사회적 구조와 맞물려 형성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는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그 안에 숨겨진 우리 삶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내달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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