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은 실리콘밸리의 IT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트레이드마크지만, 지난 달 23일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제8회 미중 인터넷산업포럼(Internet Industry Forum)'에는 모두가 정장차림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팀 쿡 애플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세계 IT시장을 이끄는 CEO들은 모두 어두운색 정장을 차려 입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영접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IT기업들의 시가총액이 2조 5000억 달러(약 2957조원)에 달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IT 수장들, 중국·인도에 러브콜
정장차림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 CEO들이 시진핑 주석을 영접하고, 모디 총리에게 투자약속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안긴 목적은 바로 중국·인도라는 거대한 신흥시장 진출 확장에 있다.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은 인터넷 이용자가 6억 명에 달해 세계 최대이며, 인구 12억 명인 인도의 인터넷 이용자는 2억 명으로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이용자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규제에 가로막혀 본격적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규제 강화를 이유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이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중국발 사이버 공격 피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외 IT기업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규제가 도사리고 있어 시장 진출과 사업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시진핑 주석은 포럼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대폭 줄이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확대 하겠다”며 시애틀을 찾은 IT기업 수장들에게 화답했다.
◆신흥시장 개척 경쟁 치열한 실리콘밸리
세계를 이끄는 IT 기업들의 최대과제는 신흥시장 개척이다. 3일 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은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에 직면해 성장이 둔화세를 보이고 있어 중국과 인도 진출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언급했다.
MS는 시진핑 주석 방미에 맞춰 중국 인터넷 검색 업체 바이두(百度)와 제휴를 발표했다. MS는 ‘윈도10’에 도입된 새 브라우저 '에지'에서 바이두를 중국의 대표 검색 사이트로 채택하고, 바이두는 ‘윈도10’의 중국내 보급에 협력하는 것이 제휴의 골자다.
구글도 내년 말까지 인도 국내 500개 기차역에 무료 WiFi(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반도체 칩 제조업체 퀄컴은 인도 스타트업에 1억 5000만 달러(약 18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과 인도, 서로 다른 실리콘밸리 접근법
시진핑 주석은 첫 번째 방문지인 시애틀에 실리콘밸리 수장들을 불러 모았다. 외신들은 IT기업 수장들이 중국 사업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해 포럼에 참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포럼에 초대받지 못한 구글은 지난 2010년 중국 정부의 검열에 반발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어, 중국과 구글의 관계는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의 에반 스피겔 CEO와 차량 공유 업체 우버의 트래비시 카라닉 CEO가 초대받지 못한 이유도 중국 사업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모디 총리는 실리콘밸리를 직접 찾아 구글, 테슬라 모터스, 페이스북 등을 방문해 트위터로 자신의 동향을 직접 전하기도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세계 IT기업에 오랜 시간동안 인력을 공급해 온 인도와 실리콘밸리의 관계는 깊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주석과 모디 총리의 이번 방미를 통해 13억 인구의 강력한 구매력을 내세워 실리콘밸리 길들이기에 나선 중국과 인적 자원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는 인도의 접근법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