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 중국의 항일 전승기념 행사 참석을 위해 2일부터 시작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향후 20년 새로운 한중관계를 여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수교 23주년을 맞은 한중관계는 경제협력 뿐 아니라 정상외교를 포함한 정치협력도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이른바 '정열경열'(政熱經熱·'경제뿐 아니라 정치 교류도 뜨겁다'는 뜻) 관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한중, 북중 관계는 가히 패러다임의 변화라 할 정도의 중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단 한 번도 시 주석과 만나지 못한 반면, 박 대통령은 방중만 세 번째, 시 주석과는 여섯 번째 정상회담을 하게 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 남북 간 정통성 경쟁에서 한국의 정통성을 다시 확인하는 중요한 한 획을 긋는 것이다. 과거 군사퍼레이드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중국 국가주석의 옆자리는 북한 지도자의 자리였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1950년대에 최소 2차례 올라 마오쩌둥(毛澤東) 등 당시 중국 지도부와 함께 열병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이 박 대통령을 '혈맹 국가' 지도자로 대접하는 셈이다. 한국의 해방이 일본의 패망에 의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목숨을 바친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라는 한국의 주장을 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항일전우’의 예를 갖춘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번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으로 전통적인 북·중 혈맹 관계가 아닌 새로운 한·중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2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라 남북간 대화 국면이 조성된 것에 대해 설명하고 북핵 문제 등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가 전승절 참석 이유로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중국이 되길 바란다’ 언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 지난 3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3국에 모두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키로 한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 문제에 대해서도 시 주석과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패권에 맞서는 중국의 '군사굴기(군사적으로 우뚝 일어섬)'가 상징적으로 드러날 이번 퍼레이드를 박 대통령이 지켜보는 장면은 동북아 외교 지형에 만만치 않은 함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남북 관계가 군사적 긴장 해소와 함께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구도 속에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협조를 구하는 식의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보다 능동적·주도적으로 동북아 외교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한일 관계에서도 박 대통령의 대일원칙론을 적용시키며, 독도 문제, 과거사 문제 등에서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방중을 통해 한중간 경제협력을 더욱더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세일즈외교에도 집중한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절하와 증시폭락 등 최근 중국발 악재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되는 상황에서 중국측과 국제 금융 시장 불안 해소 방안 등 대처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하며 ICT, 로봇산업, 보건의료 등 신산업 진출 등 양국간 호혜적 이익 극대화를 모색하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방중 때 역대 최대 경제사절단 156명을 이끌고 한중비즈니스포럼과 1:1 상담회를 통해 대규모 투자 유치전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을 계기로 △로봇·보건의료·문화·환경·금융·인프라 등 신산업 분야로의 협력 다변화 △중국 주도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한 구체적 인프라 협력 논의 △양국 금융시장 안정화 및 발전방향 협의 등의 경제성과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8월 31일 박 대통령 방중과 관련한 경제적 성과에 대해 “정부는 한중 FTA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관세 장벽을 해소하고, 전자상거래 등 소비재 유통채널을 확보하며, 대중국 투자유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중 FTA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 방중 기간 한국과 중국 뿐 아니라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서도 새로운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