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22일 오후 6시 20분께 판문점에 열린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 북한이 남북회담 경험에서 잔뼈가 굵은 김양건 조선노동당 비서와 북한군 서열 1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대표로 파견하면서 대표단의 구성과 격(格)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대표로 나서면서 이번 남북 고위급접촉 대표단은 과거에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극히 이례적 구성이다.
우리정부가 참석자의 급이 맞지 않다며 거부하자 북한은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그리고 우리측 김관진 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간 2대2 접촉을 수정제의하면서까지 김양건을 접촉에 포함시키려 했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접촉을 통해 포격도발사태 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쪽에서 대남 강경파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나서지 않고 협상가인 김양건이 직접 나서는 것을 보면 무언가 대담한 제안을 해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양건은 20일 김관진 실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둘러싼 남북간 군사적 충돌사태를 해결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계기로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과 방남했을 당시 인천의 한 식당에서 김관진 실장과 오찬회담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측에서는 당시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참석했다.
당시 북측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10월말~11월초에 개최하자"는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회담은 식사를 겸한 환담수준이었고 정식 회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의 만남은 회담 성격으로는 처음이라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장관급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의 군부서열 1위 총정치국장이 회담 형식의 첫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과거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에는 수많은 장관급 회담이 열렸지만 우리 통일부장관과 북측 대남담당 비서겸 통일전선부장이 회담 파트너로 만나는 것도 처음이다.
과거 북측은 우리 통일부장관의 상대로 내각책임참사를 내세웠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 2007년까지 총 21차례에 걸쳐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통일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선 데 비해 북측은 내각 책임참사가 단장으로 나섰다.
내각책임참사는 북측에서는 당 부부장급, 우리로서는 차관급에 해당한다. 때로는 내각책임참사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당 과장급에 해당하는 인사도 있었다. 그동안 장관급회담에 나선 북측 전금진, 김령성, 권호웅 등은 장관급으로 보기에는 비중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이 때문에 남북 수석대표간에 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우리 내에서도 나오기도 했었다.
지난 2013년 6월 남북이 회담 대표의 격 문제를 놓고 씨름을 벌이다 무산된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남북 고위급접촉 대표단 구성은 격의 측면에서 그동안 남북간 관례에 비춰볼 때 상당히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