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나의신부’를 되찾기 위해 괴물을 자처하는 남자, 김도형
“하하. 제가 이번 작품에서 목소리를 너무 깔았죠?”라고 되묻는 김무열은 ‘아름다운 나의신부’에서 폭력 조직 보스의 정부(情婦)였던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를 구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갔다. 몸에는 피 칠갑을 하고, 눈에는 약혼녀만 담은 채로 정신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사내는 친구의 배신을 알았을 때도, 그녀를 납치한 조직의 보스를 대면했을 때도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다. 낮게 읊조리며 울분을 삼킬 뿐이었다.
“김도형(김무열)이 꿈꾸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사실 드라마 현장은 대사를 그렇게 작게 말할 수 없는 환경인데, 오디오 기사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기사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영화 톤으로 대사를 치면 오디오 잡기가 힘들다’고 하셨지만 제가 통사정을 했어요. 특수부대 출신의 엘리트지만 사람과의 소통에는 서툰 김도형을 표현하기 위해 작고 낮게 말하는 설정은 포기할 수 없었거든요.”
김도형은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어서 이 시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약혼녀의 어두운 과거까지 진심으로 포용했고, “왜 이렇게 늦었어요”라고 투정부리는 그녀를 향해 “(집안에서 강요한)맞선 보고 오느라고요”라고 말할 만큼 미련스럽게 솔직했으며, 정인(情人)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는 법이 없었다. 이상 속에 있던 김도형을 현실 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이렇듯 포기하는 법이 없는 김무열의 뚝심이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나의신부’는 ‘감성 액션’이라는 타이틀을 잃은 적이 없다.
“이 드라마가 표방하는 것이 ‘감성’ 액션이잖아요. 감성이 먼저고 액션이 나중이라는 거죠. 김도형이 움직이는 계기가 중요하니까요. 사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출연을 결정했어요. 주인공이 움직이는 모티브가 아주 명료하고 정확한 것이요. 회를 거듭할수록, 액션이 늘어갈수록 액션에 치우치게 돼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그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를 찾아간다는 목적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감성 ‘액션’을 해내기 위해 김무열은 제 속도를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릴 만큼 내달렸고, 6층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으며, 먼지 구덩이 속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김무열은 “만약 운동을 위해 달렸다면 그렇게까지 뛰지는 못했을 거다. 약혼녀를 향한 절실함이 있어서 가능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샤이아 라보프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 정말 미친 듯이 뛰는 그를 보고 ‘크로마키에서 연기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절실하게 뛸까’하고 감동했었다. 샤이아 라보프 덕에 CG 작업으로 만들어진 배경이 더욱 진짜같이 보였다고 생각한다”며 “‘액션을 하려면 저 정도는 해야지. 오늘도 샤이아 라보프처럼 달려보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누구보다 더운 여름을 보낸 김무열은 “살이 5kg 정도 빠졌다”고 했다. 살만 빠진 것이 아니다. 찰과상은 기본에 부상 당한 것을 모르고 상처에 분장을 덮고 촬영하는 바람에 온몸에 흉터도 남았다. 지난 4월 김무열과 결혼한 배우 윤승아의 걱정이 오죽했을까.
“와이프가 위험한 건 대역 쓰라고 했지만, 막상 촬영장에 가면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몰래몰래 직접 찍다가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되는 바람에 딱 걸렸지 뭐예요. 하지만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 욕심과 간절함을 아니까요. 아내도 고생이 많았죠. 집에 늦게 들어가면 반려견들이 짓는 바람에 잠에서 깨 제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깨어있고, 아침에는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도 챙겨주고요. 승아가 ‘오빠랑 같이 드라마 찍는 기분이야’라고 할 정도였죠. 작품이 잘 끝났으니 이제 제가 승아를 챙겨줘야죠.”
“인생뿐 아니라 배우로서도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라 든든하다”는 김무열에게 결혼이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생긴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이나 연기가 더 절실해졌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건 결혼 전부터도 그랬으니까요. 작품을 대하는 힘은 언제나 뜨겁죠. 결혼 후에는 냉철함이 생겼달까? 현실과 작품을 명확히 분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름다운 나의 신부’는 고되고 외로운 작품이었다. 이제는 코미디를 하며 유쾌하게 일하고 싶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이지만 마땅한 작품이 없다면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코미디를 찾아보려고 한다”는 김무열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 좋겠다”고 부러운 기색을 내비쳤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영화면 영화, 연극이면 연극 한 분야를 고집하는 선배들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죠.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도 쉽지 않거든요.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는 면에서도, 분야에 특화된 연기를 함에서도요. 드라마나 영화에만 집중하는 것이 차기작을 정할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는 젊은 예술가로서의 책임 때문인 것 같아요. 배우라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니까요.”
“데뷔 13년 차인 지금, 여전히 기민하게 노력하느냐”는 질문에 김무열은 단박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노력한다고 연기가 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미친 듯이 노력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매달릴수록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말더라”라고 회상했다.
“연극 하는 선배 중에 밤에는 대리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저녁에는 공연하는 분들이 많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치열한 삶이 배우에게 큰 자양분이 되기도 하죠. SBS 드라마 ‘일지매’(2008)를 찍을 때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만 타고 다녔어요. 긴 기간도 아니었는데 그사이에 지하철 표가 없어지고 전부 카드로 바뀌었더라고요. 표를 사기 위해 지하철역을 한참 헤매면서 ‘이러면서 무슨 연기를 하겠느냐’고 자책했어요. 모든 예술의 기반은 삶이잖아요. 그 안에서 찾아야죠.”
▶ 자괴감과 열등감을 자양분
김무열은 인터뷰 내내 “더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주변에서 “인제 그만 좀 하라”고 할 정도로 자책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무열은 그 자괴감과 열등감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아버지께서 사고로 크게 머리를 다치시고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셨어요. 자연스레 제가 집안의 가장이 됐죠. 기능을 팔 듯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죠. 광명 집에서 대학로로 출· 퇴근하는 교통비도 안 나오던 걸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열등감, 자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양분으로 삼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러느냐고요? 어제도 그랬죠. 영화 ‘베테랑’을 보면서 유아인의 연기를 보면서 ‘나보다 한참 어린애도 저렇게 연기하는구나’ ‘나는 저 나이에 무얼 했지?’ 자책했거든요.”
자신을 책망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김무열은 여전히 기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