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택 글로벌경영협회장(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한국경제가 직면해 있는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산업체가 무조건적인 정부의 지원을 바라기보다는 스스로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 한국은 후진국이라는 피해 의식부터 버려야
이를 위해 양 회장은 한국이 후진국에서 벗어나 이미 선진국 반열로 올라섰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회장은 "1979년 미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한국사람'이었다"며 "과거에는 한국사람이라는 단어 뒤에는 좋은 얘기가 나온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거나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마치 일본사람이 한국사람을 비아냥거리듯 여전히 한국사람끼리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소장으로 있으면서 코드분할다중방식(CDMA)을 상용화할 당시 이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 탓에 상용화가 녹록지 않았다. ‘CDMA 불가론’이 끝까지 상용화 발목을 잡은 것이다.
CDMA 상용화 기술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점까지도 사업자와 국회, 청와대까지 불가론을 내세웠다. 국내 이동통신 기술이 아날로그 방식을 겨우 구현하는 수준인 데다 CDMA 기술 특허를 가진 퀄컴마저도 상용화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CDMA 기술 개발을 총괄하던 양 회장이 관계자들을 만나 담판을 지었고, 개인휴대통신(PCS) 개발 방식을 CDMA 단일 표준으로 공식 발표하면서 모든 잡음은 사그라들었다.
양 회장은 "문제점만 보고 지적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인식하고 선진국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계획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모든 면에서 최고인 것은 무리가 있다"며 "어느 한 부분이라도 글로벌 1등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분야에서만큼은 선진국인 셈"이라고 했다.
◆ "정부 지원 바랄 때 지났다"... 산업체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양 회장은 "기업들이 정부 덕에 산업이 발전되는 것을 바랄 때는 지났다"며 "기업이 산업을 자발적으로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 사업을 진행하거나 직접적인 자금을 받아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 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던 시절에는 산업 촉진기금이 한 해에 많게는 1조7000억원에 달해 풍부한 기금을 바탕으로 공무원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많은 기업과 비즈니스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대기업들의 R&D 투자가 정부의 수십 배에 달해 예전 같지 않다"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이 ICT 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R&D 비용은 2011년 10조원 수준에서 지난해 15조3000억원까지 늘어났다. 이는 다른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삼성SDI도 매년 매출의 7~8%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R&D에 투자한 돈은 6200억원에 이른다. 연구인력은 2300명이며 이 가운데 석·박사 비율이 40%에 달한다.
연구개발 인력의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조직, 글로벌 현지 학술연수, 인재 양성센터 등의 각종 지원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양 회장은 "중국의 IT기업이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삼성전자 등 대기업 그룹사들이 수십조의 돈을 쏟아부은 만큼 정부의 정책을 바라기보다는 경쟁사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발판은 만들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회장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프로그램은 10여 년 전에도 국내에는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도적 뒷받침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창조경제에 걸맞은 기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경우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두려워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지난해 360만개의 기업이 새로 태어나, 스타트업의 산실로 변화하고 있다.
양 회장은 “벤처기업은 통상 10개 중 1개만 성공한다"며 "성공한 벤처가 많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만 정부가 다시 벤처기업 창업 열기를 살리려면 기술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전했다.
◆ 정부 부처별 제각각 개편할 때
양 회장은 "우리나라가 뒤쳐저 있는 부분이 외환을 비롯한 재정 부분이다"며 "IT는 선진국 대열에 오른 반면 한국 경제는 중국 경기 불안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겹겹이 쌓인 대외 악재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경제팀이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정책 대응으로 일관했다. 경기 회복보다는 재정 건전성에 더 치중하는 느낌을 주었고 기준금리 역시 역대 최장기간 동결을 유지하는 주요국 정책 기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특히 내년 정부 R&D 예산은 1991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내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중 국방‧인문사회 분야 등을 제외한 19개 부처 373개 주요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 올해보다 2.3% 감소한 12조6380억원을 투자한다.
예산 당국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기획재정부 역시 R&D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만큼 내년 R&D 예산 감축 가능성이 크다.
양 회장은 "재정에 있어서 일련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성과 없는 사업은 축소하고, 제각각인 연구개발 사업을 개선하지 않고는 융합사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나라는 그간 정보통신 분야 연구개발을 통신사업자에게만 맡겨 왔다"며 "통신사업자들이 사업을 장악하는 만큼 직원들은 슈퍼 갑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과거에는 CDMA 상용화와 전전자식교환기(TDX) 개발 등에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들어갔기 때문에 대기업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양 회장은 "정보통신은 여러 산업이 관련된 만큼 미래부가 모든 정책을 다 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각 부처는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민간에게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양 회장은 제4 이동통신에 대해서도 더 빠르고 값싼 통신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양 회장은 특히 UCS(User Created Service)를 핵심 비즈니스로 꼽았다. 그는 "기존의 통신 이용료는 통신사업자가 90%를 가져갔으나 UCS는 10%만 사업자가 가져가는 개념"이라며 "이용료를 대폭 낮춰 응용서비스를 부담 없이 개발하고 수익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회장은 " UCS 생태계 조성을 통해 저절로 창업 붐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창조경제를 활성화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양승택 글로벌경영협회장은 ◆1939년 부산 출생 ◆1957년 동아고 졸업 ◆196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1968년 미국 버지니아공과대학교 대학원 ◆1976년 미국 브루클린공과대학대학원 공학 박사 ◆1968년 벨연구소 연구원 ◆198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TDX개발단장 ◆1992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2001년 정보통신부 장관 ◆2003년 동명정보대학교 총장 ◆2012년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회장 ◆2013년 글로벌경영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