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지난 5개월간 급박하게 진행됐던 그리스의 극적 드라마가 3차 구제금융 협상 합의점 도출로 '일단' 마무리됐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모면했지만, 강도높은 긴축안을 수용한 '굴욕협상'대한 그리스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또 한번의 그림보(Grimbo·그리스와 림보의 합성어로 마치 림보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을 의미) 국면에 맞닥뜨리게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이하 현지시간)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채권단의 강도 높은 개혁안을 수용하는 대가로 구제금융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집권당 내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고 14일 보도했다.
시리자 내 강경파인 ‘좌파연대’는 이번 합의를 '그리스의 굴욕'이라고 단정 지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리자의 연정 파트너로 보수 성향의 독립그리스인당(ANEL)도 이번 합의에 대한 지지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파노스 카메노스 독립그리스인당 국방장관은 합의안에 대해 "독일과 연합군에 의해 쿠데타를 당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11일 치프라스 총리가 제안한 개혁안 표결 때 찬성표를 던졌던 카메노스 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내놓은 것은 험난한 개혁안 입법 과정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리스 정치권에서는 시리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입법이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집권당 내 반대세력 표를 제외한 다 해도 야권의 지지표가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시리아 내 의원 40명 정도는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모두 300석으로 시리자는 그중 149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13석을 가진 독립그리스인당과 연정을 구성해 과반 이상을 확보해왔다. 시리자 당의 다수가 이탈할 경우 과반 밑으로 떨어지게 되고 개혁안 입법은 힘들어진다.
치프라스 총리가 직면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리스 경제가 이를 견딜 능력이 충분한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남아있다.
침체된 그리스 경제에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에 따라 연금 삭감, 부가가치세 인상, 국유자산 민영화, 채무상환을 위한 500억 유로의 기금조성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연합(EU)의 한 관계자를 인용, "그리스에 대한 개혁안 리스트는 가혹한 정신적 ‘물고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또 한번의 도박에 나설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치프라스 총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개각이다. 극단적인 성향을 배제한 중도진영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지지하는 다른 정당과 연대해 거국내각을 꾸리는 것도 또 다른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도 불가능하다면 조기총선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 일단 3차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9월 조기총선을 치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기 총선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마지막 선택은 사임이다. 개혁안 입법에 실패하고 유로존으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을 못 받을 경우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서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는 과연 치프라스 총리가 새 정부 구성이나 조기총선, 사임 없이 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