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이러니다. 당시로 돌아가보자. 2002년 6월, 우리나라는 월드컵열기로 뜨거웠다.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다. 그때 서해 바다 한 가운데에 포성이 울린다. 북한의 도발, 1999년 6월 15일 연평해전 이후 2번째 도발이었다. 북방한계선(NLL)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로 기록된 연평해전에서 우리나라 해군 6명이 희생했다.
이후 13년만에 '연평해전'이 주목받고 있는 건, 영화 덕분이다.
망각을 일깨우는 건 예술이다. '연평해전' 영화가 '전쟁의 공포'를 재현한다면, 사진작가 임안나는 도처에 널린 살상무기를 통해 전쟁에 무감각해진 감정을 건드린다.
'잊지 말자 6.25' 구호같은 풍경은 아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러니다. 전쟁의 거대한 도구들이 공원, 휴게소, 놀이시설에 놓여있다. 살생무기 앞에 포토존 명판이 부착되어 있거나 공룡조각, 벤치, 벚꽃과 공존하고 있다. 탱크가 경운기마냥 덩그러니 놓여 있거나 무기 사이로 아이가 뛰어 다닌다. 유치원생들은 무기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그 '생뚱맞음'이 사진의 메시지다. 작품 제목은 모두 '프로즌 히어로(Frozen hero, 얼어 있는 영웅)'로 달렸다. 작가는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폐무들과 전국에 전쟁을 상기하며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에 배치된 낡은 무기들이 돌연 냉동된 모습으로 보였는데 ,그 무기들 앞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때론 이율배반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전쟁의 무기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인 작품은 또다른 아이러니를 빚어낸다. 무기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는가 하면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한다. 작가의 시각 때문이다. "어느 시점부터 전쟁영웅은 사람이 아니라 첨단 무기가 됐다. 스텔스기 하나에 평화를 의존하는 형국이다. 우리가 인간보다 ‘무기 기계’에 평화를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사회에서 전쟁은 영화와 게임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들로 각인된다. 작가도 그랬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전쟁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후 "무기와 전쟁을 통해 이름 없이 사라지는 군인들에게 작품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며 “전쟁의 두려움과 판타지가 작품에 서서히 녹아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사진작가지만 '전쟁의 아이러니’를 주제로 한 전시여서 더욱 이채롭다. 지난 2011년 ‘Reconstruction of Climax’와 2012년 ‘irony-addicted’를 포함해 이번이 세 번째다.
삶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현실과 가상,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작품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작가는 "다만 예술가로서 기존의 관념에 끊이 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역할"이라며 "그게 내 작업의 이유"라고 했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이어진다. (02)738-7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