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메르스 이기주의

2015-06-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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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사회와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태가 그랬다. 지난 5월 시작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속살과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 영리병원 중심의 의료시스템이 지닌 허점도 드러났다. 국내 최고의 병원을 자부했던 삼성서울병원이 전염병 치료에 필수적인 음압병실이 하나도 없었다. 유지비가 많이 들고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렵게 버텨왔던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인천의료원 등 국공립 의료시설이 그나마 제 역할을 했다. 돈이 안 된다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던 경상남도의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 단견이었는지도 밝혀졌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사람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믿음을 저버린다. 반면 어떤 이들은 사익을 앞세우지 않고 공익을 생각하며 행동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1인당 소득이 전국 최하위수준인 전라북도 시골 마을의 주민은 102명은 메르스로 인한 14일간의 격리 생활을 묵묵히 견뎌냈다. 다 익은 복분자, 블루베리, 매실 등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하고, 지병 치료에 필요한 병원 방문도 못했지만 순창군과 전라북도의 조치에 주민이 헌신적으로 협조했다. 결국 추가 의심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지난 19일 격리 조치가 해제됐다. 물론 주변의 협조도 큰 몫을 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구호물품과 밑반찬을 전달했고 약 처방을 대신받아 전달했다.
하지만 순창군에 사는 시골사람들과 반대로 행동하는 사례도 많았다. 자가격리 지시를 무시하고 중국으로 출장을 가는 바람에 중국내 반한 감정을 촉발시키고, 같이 탄 비행기 승객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도 있었다.

답답하다며 지방 골프장에 갔다 온 후에도 “내가 잘 못한 게 뭐냐”며 거꾸로 큰소리친 사람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는 바람에 가족은 물론 비행기 승객과 제주도 관광지를 위험하게 만든 사람도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는 특정병원의 의사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에게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해프닝도 있었다.

타 지역 환자를 우리 지역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역 이기주의도 나타났다. 해외 출장을 가고, 골프를 치고, 제주도 가족 여행을 갈 정도로 소위 ‘알만큼 알고, 살만큼 사는 분’(?)들이 공익을 무시하고 사익을 앞세웠다. 같은 공동체의 멤버로 상호 신뢰와 배려가 부족함이 드러났다. 신뢰와 배려는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공동체에 있어 신뢰의 역할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푸트남(Putnam)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자본의 대표적 요소인 신뢰는 공동체가 개인간의 관계면에서 기회주의와 도덕적 해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 휘틀리(Whiteley)의 34개국 사례연구에 따르면, 신뢰가 1% 향상될 경우 1인당 실질GDP가 0.6% 상승한다. 송호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사익보다는 공익을 앞세우고, ‘공익에의 긴장감’을 구비한 진정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에게 어떤 경험과 준비가 필요한가?

행복한 나라 순위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덴마크에서는 사과상자와 돈 바구니만 놓여 있는 ‘무인 노점’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서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덴마크 행복연구소의 메이크 위킹 소장은 “신뢰가 배신당하지 않은 경험이 다시 타인을 신뢰하게 만들고, 이런 과정이 선순환하면서 거대한 ‘신뢰의 사슬’을 이룬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도 신뢰가 신뢰를 낳는 선순환의 경험이 필요하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이를 엄정하게 지키게 하고, 사익보다는 공익을 앞세우는 것이 결국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적·물적 자본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뢰와 배려, 시민의식, 공동체의식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도 선진국 도약을 위한 필수 요소다. 이기주의의 불리함을 몸소 체험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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