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의료원 전경 [사진=한지연기자]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환자 치료에 대한 중압감은 물론 동료들의 감염이 늘면서 느껴지는 심리적 불안감이 크다. 어린 자녀가 있는 의료진은 감염·낙인 우려 때문에 한 달 이상 집에 못 들어간 경우도 있다. 필요한 경우 정신과 전문의와 면담하면서 공포와 싸우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 A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거점 의료기관인 국립의료원. 19일 찾은 병원은 화창했던 날씨와 달리 병원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감염보다 무서운 환자 떠나보내는 공포
국립의료원에는 국내 첫 메르스 환자를 비롯해 19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다. 확진자가 12명, 의심 환자가 7명이다. 그동안 확진자 2명이 완쾌됐고, 3명은 사망했다.
이 병원의 감염·호흡기내과 등 30명의 의사와 간호사 80명은 한 달째 집에 가지 못하고 '메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의료진 안내를 받아 메르스 환자들이 입원한 본관 5∼8층 격리병동에 들어서자 '전운'이 감돌았다. 중환자 1명당 보통 5~6명의 의료진이 붙는데,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중환자에겐 1~2명이 추가로 배치된다. 이들은 한 달째 2~3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24시간 동안 환자를 관리 중이다.
정은숙 수간호사는 "중환자가 늘면서 경력이 적은 신입과 결혼을 앞둔 간호사,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간호사까지 총동원돼 근무하고 있다"며 "의료진 감염에 대한 공포와 '감염 덩어리'라는 세상의 따가운 인식, 24시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업무 환경이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의료진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말에 조영중 진료총괄지원부장은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감염 문제로 방호복·마스크·장갑·소독 등을 해야 해 환자에게 접근하는 데만 10분 이상이 걸린다"며 "내가 감염될까 하는 두려움보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환자가 잘못될까 봐 더 무섭다"고 말했다.
병원은 음압병실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6~7층에 음압병상이 17개 있고, 추가 감염자 발생에 대비해 17개를 추가했다. 최대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동식 음압텐트 병실도 증축 중이다.
신수영 중환자실 수간호사는 "어제도 오후 3시에 컵라면 한 개를 먹고 새벽 3시까지 버텼다"면서 "31년간의 병원생활 중 지금이 가장 힘들지만, 환자가 완치돼 퇴원하면 그것만큼 큰 보상은 없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내부 [사진=한지연 기자]
◆병원 용역직원·인근 상인도 극심한 피해
외래 환자의 발길이 끊긴 병원 1층 로비는 텅 빈 채 곳곳의 불이 꺼져 있었다. 커피숍·편의점·매점 등 편의시설도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병원에는 접수 데스크 직원,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최소 인력만이 상주해있었다.
국립의료원에서 2년째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는 이모(59)씨는 "환자 발길이 끊기면서 업무량이 줄자 업체 측에서 미화원의 월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면서 "의료진 고충만 주목받고 우리 같이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과소평가받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병원 인근 상인들은 하루빨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 박모(63)씨는 "이 지역은 병원 외래객과 관광객 매출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라며 "메르스 사태 장기화로 10시간 동안 있어도 하루 밥값도 벌기 힘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김 모(45)씨 역시 "손님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상인들은 마스크도 못쓴다"며 "메르스로 죽는 환자들도 억울하겠지만 우리도 굶어 죽게 생겼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