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중후군) 확산 사태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재난안전시스템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세월호 참사가 발발한 지 불과 1년이 조금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후진국형 국가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동 대처의 실패는 물론 △컨트롤타워 부재 △사라진 재난 매뉴얼 △관료화와 부처 칸막이 등이 재연됐다. 메르스 사태가 ‘제2의 세월호 참사’로 전락한 결정적 원인이다. 아주경제는 9일부터 총 3회 기획을 통해 2003년 사스 대처 과정에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인정받은 감염병 예방 모범국이 왜 10여 년 만에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냈는지, 그 원인과 대안을 점검한다. <편집자 주>
한국 사회가 ‘메르스 포비아(공포)’에 빠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정부3.0’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3.0’이란 공공정보의 적극적 개방과 부처 간 칸막이 철폐 등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운영 패러다임이다. 개방·공유·소통·협력 등 4대 키워드를 통해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정보 쉬쉬하자 ‘재난 매뉴얼’ 작동 멈춰
“국민이 알아야 하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쉬쉬해서 사태만 키운 꼴이 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 가치에 둬야 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날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던진 말이다.
실제 그랬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로 메르스 관련 병원 공개를 차일피일 미루던 정부는 감염병 환자가 첫 확진 판정을 받은 지 18일 후 관련 정보를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메르스 사태의 직접 지휘 방침을 밝히자 ‘민심의 역린’을 우려한 정부가 뒷북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날 오후(정오 기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누적 환자는 95명에 달했다. 3차 감염 우려가 현실화됐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의학 기술의 위상은 간데없고, 한국 사회는 지휘자 없는 난파선으로 전락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건당국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제는 메르스 확전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매뉴얼’이 박근혜 정부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정부3.0이다. 본지 확인 결과, 정부3.0 매뉴얼에는 통합재난 안전관리 구축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소방방재청·방송통신위원회 등 각 부처 간 협업을 통해 국가적인 재난관리정부를 공유, 신속하게 재난상황을 판단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처’가 아닌 ‘과제’ 중심의 협업 시스템 구축을 천명한 것이다.
◆정부3.0 간데없고 ‘비밀주의’만 남아
이를 메르스 확산 사태에 접목할 경우 ‘확진 환자 발생→환자 이동 경로 및 병원의 정보 공유→각 부처 간 협업 시스템 작동→범정부대책본부 구성→예방수칙 등 관련 정보 제공’ 등 일련의 과정이 시스템화된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과정에서 관료주의와 부처 간 칸막이를 거둬버린 ‘협업 체계’는 없었다. 시민 불안과 괴담 공포 등을 이유로 관련 정보를 ‘쉬쉬’하는 ‘비밀주의’만이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정보공유 매뉴얼을 외면한 사이, 행정의 골든타임을 실기했다는 의미다.
‘정부3.0’의 가치인 수요자중심의 맞춤형 정보 제공은커녕 일반 시민들이 공급자로 나섰다. 공무원사회의 관료주의에 뿔난 시민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관련 정보를 주고받았다. 정부3.0의 매뉴얼 중 하나인 ‘긴급재난문자’는 지난 6일에서야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위기 때 이를 지휘할 총책임자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를 맡아 전국가적 총동원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