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CJ E&M]
새벽까지 편집하고 느지막이 출근한 나영석 PD를 4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CJ E&M센터에서 만나 제일 먼저 건넨 것은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나 PD는 지난달 26일 제51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배우도 예능인도 드라마 감독도 아닌 예능프로그램 PD가, 그것도 지상파도 아닌 케이블채널 소속 PD가 대상을 받은 것은 반백 년 역사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처음 있는 일인데도 호들갑 떠는 법 없이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많이 봐 주면 됐다”고 했다.
“방송을 많이 봐 주시면 그게 좋은 것이지 따로 바라는 게 있나요. 연예인도 아닌데…어쨌든 굉장히 기쁘기는 했어요. 이런 상 언제 받을까 싶기도 했고요. 케이블채널 PD와 작품까지 상을 주는 건 백상예술대상이 거의 유일하니까 큰 영광이죠.”
노인들의 배낭여행이, 시골에서 차리는 소박한 삼시 세끼가 이렇게 큰 일을 낼 줄 누가 알았을까? 비결을 물었더니 “제가 촌스러워 그렇죠. 뭐”란다.
나 PD는 ‘내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프로그램’이라고 했고, ‘스태프’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했다.
“예능은 분명히 집단 창작 체제예요. 제가 늘 ‘저 혼자 만드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죠.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능프로그램 메인PD들이 그렇게 말할 겁니다. 드라마랑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드라마는 메인PD 한 명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데 우리는 PD도 대여섯 명, 작가도 대여섯 명이죠. 다 같이 모이면 왁자지껄한 대가족 같아요.”
방송가를 휘어잡은 그 왁자지껄한 식구들이 모이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 이번 주에는 무슨 요리를 시킬지, 다음 주에는 게스트를 누구를 부를지(이서진 옥택연 김광규와 친한 연예인이 동나 큰 고민이라고 했다), 뜨거워진 햇볕 탓에 힘아리가 없어진 농작물에 빨리 물을 줘야지…하는 이야기를 한단다.
그 중 이우정 작가와는 KBS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때부터 함께 했다. 오랜 인연의 시작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찐따였어요. 그냥 찐따도 아니고 개찐따요. 낯도 가리고 소심한 편이라 나서서 뭘 하는 편도 아니거든요. 변방에서 조용조용한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죠. 100명 있으면 한 98등 했으려나…그러던 중에 이우정 작가와 이명한 PD(tvN 본부장)를 만났죠. 찐따 셋이 만나니까 시너지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만든게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이었죠. 그 힘으로 ‘1박2일’ ‘꽃보다 ○○’ 시리즈까지 함께 하게 됐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끼리 낄낄거릴 수 있는 마음 맞는 찐따를 만나는 게 참 중요하다니까요.”
그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이유도 이 찐따들 때문이다. “우리 프로그램이 망하면 저 혼자 힘든 게 아니에요. 오래도록 함께 호흡을 맞춘 식구가 모두 고통을 겪게 되죠.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공포에 시달리곤 해요. ‘망하면 어떡하지? 망하는 건 둘째치고 대중은 거들떠도 안 불 프로그램에 나만 빠져있는 거면 어떡하지’하는 생각 때문에요. 그럴 때마다 우리 식구들끼리 깊이 상의하고 토론하고…‘망하면 망하는 거지. 이제 한번 망할 때도 됐잖아’하며 용기도 얻기도 하고요.” 나영석 PD의 짐을 덜어주는 것도 역시 마음 맞는 찐따들, 식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