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통영) 채명석 기자 = 지난 22일 오후 5시.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안정산업단지내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제1 골리앗 크레인(900t급)이 있는 조선소 좌측 안벽에 들어서자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거대한 선박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배는 진수를 위해 육상인 안벽에서 물위에 떠 있는 플로팅도크로 이동하는 ‘로드아웃(Load-Out)’을 앞두고 있었다. 싱가포르의 나빅8(Navig8)이 발주한 10만9000t급 정유운반선이다. 길이 249.9m, 폭 44m, 높이 21m의 제원을 갖춘 이 선박은 성동조선해양이 200번째로 육상에서 건조해 바다로 보내는 선박이다.
로드아웃 장소는 지난 2006년 5월 26일 성동조선해양이 처음으로 땅 위에서 건조한 선박을 바다로 보낸 곳이다. 이후 이날 선박까지 200척이 이곳을 통해 대양으로 나갔다. 1호선 선박이 나간 후 3284일만, 100호선 선박을 로드아웃한지 1547일만이다. 2010년 초반 어려움만 없었다면 200호선 로드아웃은 더 빨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딛고 성동조선해양은 전 세계 유일한 육상건조 전문 조선사이자, 조선 빅3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을 개발·개선해 내며 최다 선박 건조 기록을 쌓아나가고 있다.
◆독자개발 ‘푸시풀 시스템’, 수만t 선박을 분당 4m 이동
상쾌한 날씨는 아니었으나 바람도 거의 불지않고, 파도도 살짝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 했지만 신경 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김윤하 생산본부장(상무)의 지휘에 따라 준비를 마친 선박은 오후 5시경 플로팅 도크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선박을 끄는 장비는 길이 3m, 가로와 세로 각각 1m의 조그마한 ‘푸시풀 시스템’이란 이름을 붙인 장비다. 성동조선해양이 독자 개발한 푸시풀 시스템이 없었다면 선미쪽을 붙잡아 끌어내는 방식의 세계 최초의 ‘종(縱) 방향’ 로드아웃은 불가능했다. 푸시풀 시스템은 성동조선해양이 전 세계 조선사의 큰 획을 그은 세기적 개발품이다.
세계 최초로 육상건조방식을 성공한 현대중공업도 ‘횡(橫) 방향’ 로드아웃 방식을 통해 배를 바다에 띄웠는데, 이는 종방향으로 할 경우 선박 전체에 균듕하게 끌어가는 힘을 전달할 수 없어 선박이 깨어질 위험이 높다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성동조선해양이 1호선을 로드아웃 할 때 구경하러 온 조선사 관계자들도 실패할 것이 뻔하다며, 어떻게 선박이 깨어질지 내기를 걸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성동조선해양이 성공해 내자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선박이 움직였다. 그런데 100번째 선박보다 이동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성동조선해양에 입사한 뒤 푸시풀 시스템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한 ‘일등공신’ 이현철 공무부 과장이 자리에 있었다. 이 과장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은 세 번째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푸시풀 시스템을 포함해 성동조선해양이 자력으로 개발한 진수방식의 공식 명칙은 ‘GTS(Gripper-Jacks Translift System) 공법’이다.
첫 번째 버전은 선수쪽에 설치돼 좌우에 달린 4개의 다리를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레일을 붙잡아 당기며 배를 분당 1.5~2.0m 속도로 이동시킨다. 1호선때 사용된 기계가 양쪽 다리를 동시에 움직여 레일을 붙잡고 이동해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는데, 두 번째 버전에서는 이 단점을 해결함으로써 로드아웃은 8시간여에서 4시간, 소형 선박은 3시간까지 앞당겼다.
세 번째 버전은 푸시풀 시스템에 자체 동력을 달아 레일을 붙잡고 풀었다가 다시 붙잡느라 중간에 멈추는 과정 없이 동력의 힘으로 그대로 죽 밀고 간다. 따라서 이동 속도가 분당 최대 4.0m까지 빨라졌다. 63빌딩 만한 선박이 이 속도로 이동한다는 건 상당히 빠른 속도다. 덕분에 최근의 로드아웃 시간은 2시간 반, 소형 선박은 2시간까지 앞당겨졌다고 한다.
◆플로팅 도크에 태우는 초반 20분이 성패 좌우
안벽의 끝에서 선박이 잠시 정지했다. 그 앞에는 320m, 폭 67m의 8만t급 플로팅 도크가 선박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로드아웃은 초반 20분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배 뒷부분부터 플로팅도크에 태우는데, 선미에는 선장실과 조정실 승무원들의 거주실이 있는 데크하우스, 엔진, 크랭크축, 프로펠러 등 주요 기자재 부품이 집중적으로 몰려있어 전체 선박 무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선미 부문이 플로팅도크에 얹어졌을 때 플로팅 도크의 수평을 잡지 못하면 선수 부분이 수직으로 들어올려져 그대로 바닷 속으로 꽂히고, 플로팅 도크도 깨어지는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종방향 로드아웃을 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마지막 최종 점검을 마친 후 오후 6시, 선박이 이동을 시작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직원들의 눈은 육지와 플로팅 도크를 이어주는 링크빔으로 향했다. ‘로드아웃’은 바다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선박이 육상에서 이별하고 바다로 돌아간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플로팅 도크에 태워진다는 것은 바다로 가기 위한 첫 과정이다. 링크빔으로 넘어간 이 때가 배가 땅을 벗어났다는 의미로 로드아웃 시간이 측정된다. 동시에 플로팅도크에는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벽 바로 옆 디지털 계측기가 초음파를 쏘며 플로팅도크의 수평 지수를 측정해 플로팅도크 컨트로룸에 실시간으로 보내주면, 컨트롤룸은 수치를 받아 바닷물을 플로팅 도크에 집어넣거나 빼줌으로써 수평을 잡아준다.
이 과정에서 물이 거칠게 플로팅 도크를 때려 소음이 발생한다. 수평 오차는 최대 20mm에 불과할 만큼 정밀한데, 이 계측기와 컨트롤룸 시스템도 성동조선해양이 개발했다. 고장에 대비해 바로 옆에서 직원이 눈으로 수평을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으나, 이 시스템도 개량과 개선을 거쳐 정밀도를 높였다고 한다. 1호선 때는 바로 사람이 눈으로 수평을 맞췄다고 한다. 여기에 플로팅 도크 끝에는 선박의 이동으로 밀리지 않도록 예인선들이 받쳐주고 있었다.
20분이 채 안돼 선미가 플로팅 도크로 안전하기 넘어와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지금부터는 바람만 거세지 않으면 왠만큼 비가 내려도 걱정 없다고 한다.
◆2시간 반 과정 완료, 현장 인원수도 줄어
남은 과정은 수수의 관리 인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빠르게 이어져 오후 8시 30분경 플로팅 도크 탑재가 완료됐다. 작업을 마무리 한 뒤 임직원들이 모여 조촐히 200번째 로드아웃 성공을 축하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이동 과정에서도 그렇거니와 마무리 후에 보니, 현장 조업 인원수가 100번째 로드아웃 때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김 상무는 “끊임없는 생산혁신과 기술개발을 통해 로드아웃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동화를 이뤄냈다. 육상건조 전문 조선사로서 다양한 노하우를 경험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최근 어려운 상황인 가운데에서도 모든 임직원들의 열정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번 성과를 거뒀다”며 “회사의 잘못도 많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달게 받겠다. 그만큼 더욱 역심히 해서 회사를 정상화 시킬 것이며, 300번째, 500번째 로드아웃을 위해 노력해 나아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