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손현주는 사실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연극무대를 통해 연기의 감각을 익히며 내공을 쌓았다. 1998년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했으며 이후 드라마 ‘결혼의 법칙’ ‘장밋빛 인생’ ‘솔약국집 아들들’ ‘폼나게 살거야’ ‘추적자’ ‘황금의 제국’ ‘쓰리데이즈’를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했다. 10년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돌고 있는 길거리 거지 역부터 대통령까지 다양한 연기를 펼쳤다.
영화로는 ‘킬러들의 수다’ ‘라이어’ ‘더 게임’ ‘연리지’ ‘은밀하게 위대하게’ ‘숨바꼭질’ 등이 있다. 손현주의 말을 빌리자면 ‘악의 연대기’(감독 백운학·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두 번째 스릴러다.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악의 연대기’는 특급 승진을 앞둔 최창식(손현주) 반장이 회식 후 의문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고, 위기를 모면하려던 순간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최반장은 승진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심하지만, 이튿날 아침 최반장이 죽인 시체가 경찰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린 채 공개되자 자신이 범인인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죄를 짓고 처분을 기다리는 기분이랄까요? 백운학 감독님도 힘이 다 빠지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긴장감은 없어지질 않죠. 긴장을 놓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긴장을 놓는 순간 촬영 중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긴장을 해야 시간 약속도 지켜진다고 생각해요. 제작비가 ‘오버’되는 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죠. 하지만 분위기는 즐겁게 해야죠. 남자끼리 수다도 많이 떨었어요. 크랭크인 한 달 전부터 꾸준히 모여서 연습을 했죠. 소소한 얘기를 하다보니 끈끈해진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어땠을까? “100% 마음에 드는 작품이 어디 있겠느냐”는 손현주는 “굉장한 시나리오를 영화로 실체화하는 과정은 분명 어렵다. 그래서 아쉬움도 남는 것 같다”고 답했다.
손현주는 거의 모든 회차에 등장한다. 영화 말미 마동석(오형사 역)과 박서준(차동재 역)이 독대하는 장면을 빼고 손현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최창식 반장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오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손현주는 더 힘들었다고 했다.
“관객은 최반장의 잘못을 알지만, 영화 속 동료들은 모르잖아요. 그걸 감춰야하는 최반장의 마음 때문에 스스로 압박감을 느꼈죠. 외롭기도 했고요. 입이 바싹바싹 말랐죠. 그래서 저는 ‘추적 스릴러’ 앞에 ‘심리’라고 붙이고 싶어요. 몸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몸은 골절만 아니면 다행이죠. 대충하질 못하겠어요. 그래서 사고가 나면 골절을 많이 당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대충할거면 뭐하러 하냐는 거죠. 힘들어서 피하려면 애초에 하질 말았어야 맞다고 생각해요. 본인 선택에 책임을 지어야죠. 제가 나태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저 스스로에게 하는 채찍과도 같은 겁니다.”
‘믿고 보는 배우’라고 불리는 이유가 손현주의 말 속에 있었다.
“단막극은 감독의 첫 연출작이 될 수도 있고, 작가나 배우들의 등용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오래된 감독과 배우들이 재기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도 하죠.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의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연극배우들은 슬럼프라는 게 없어요. 후배들한테 ‘너는 슬럼프가 언제였느냐’고 물어보면 ‘그게 뭐냐’고 되물어요.”
손현주는 KBS2 ‘텍사스 안타’ ‘강철본색’ 등 좋은 작품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단막극에 출연한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다.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말이 되느냐’에 중점을 두고 판단한다. 그래서 2편만에 ‘스릴러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이 생겼지만, 다음에도 좋은 스릴러 시나리오가 있다면 언제든 출연하겠다고 결심하는 손현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