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에서는 베트남 종전 40주년을 맞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들의 증언회가 열렸다. 이날 증언회에 나온 피해자들은 40년간 가슴속에 묻어왔던 말을 쏟아냈다.
민간인학살 생존자인 응우엔 티 탄 씨과 응우엔 딴 런 씨는 자신들이 살았던 베트남 따이빈사 안칸마을과 꽝아이성 퐁니마을에서 한국군들이 동굴에 최루탄을 던진 뒤 최루 가스를 참지 못하고 올라오는 이들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심장으로 얘기한다"는 말로 역사의 진실을 들어달라고 했고, "어떤 원한이나 증오심을 부추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부산시지부 소속인 170여 명의 노병들은 증언에 나선 베트남인들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집회에 참석했던 강성의(67) 고엽제전우회 부산지부장은 "한국군은 베트남인들을 도우면 도왔지, 양민 학살은 저지르지 않았다"며 "저런 증언은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트남 종전 40주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전쟁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다른 두개의 다른 기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40년 전 한국은 연 인원 32만명을 베트남 전에 파병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동맹국인 미국의 참전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외교적인 상황 가운데 어렵게 참전을 결정했다.
베트남전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해외파병이라는 한국군의 새로운 전사(戰史)를 썼지만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희생의 보람을 상실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한국군이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 것과 관련해 베트남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하던 한국사람들의 모습을 두고 한국인의 이중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10여년 간 거주한 한 미국인은 "베트남전을 패전이라 인정하지 않던 미국도 지금은 전쟁 범죄를 반성하고 있는데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의 이런 모습에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번 일본에게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한국이 자신들의 전쟁 범죄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한국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좋은 예를 일본에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순휘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은 "9000여명에 달하는 한국군 학살피해자 위령비를 세워서 진정성있는 사과를 보여주고, 베트남 국민들과의 화해를 통해 베트남 종전 40주년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한국군답지 않은가"라며 "우리의 과오를 사과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