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적용의 남발로 기업가들이 소신있는 경영을 추진할 수 없다는 우려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배임죄 합헌결정을 계기로 경영판단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 할 것을 법무부에 건의했다고 20일 밝혔다. 전경련은 이미 지난해 말 규제기요틴 과제로 ‘배임죄 구성요건에 경영판단원칙 도입’을 건의한 바 있는데, 민관합동회의 결과 추가논의 필요과제로 분류됐었다. 이번 법무부에 대한 건의는 이에 대한 추가 건의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부실대출혐의로 업무상 배임죄 유죄판결을 받은 저축은행회장들이 ‘배임죄 조항은 기업활동 영역에 국가 형벌권이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으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하였다(2015.2.26. 선고, 2014헌바99). 대법원이 기업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며 배임죄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는‘경영상의 판단’에 관한 법리(경영판단의 원칙)를 수용하고 있어 배임조항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고 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헌재가 합헌논거로 제시하고 있는 2002도4229판결부터다. 이 판결의 핵심은 기업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경영자가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 하에 신중하게 결정을 했다면 비록 그 예측이 빗나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배임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까지 책임을 묻는다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뿐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된다는 것이다.
국회 역시 작년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동일한 취지로 배임죄 제도개선을 요구하였다.
당시 국감에서 의원들은 ‘악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업에 손해를 끼칠 목적으로 경영을 해서 업무상 손실을 끼쳤을 때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겠으나, 우리나라는 상황 변화에 따라 결과적으로 입게 된 손실마저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영인들이 투자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도 개선에 힘써주기 바란다’고 법무부에 요청했다.
전경련은 지금까지의 대법원 판결들을 분석해 보면, 헌재가 합헌논거로 제시한 대법원 2002도4229판결에서의 경영판단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조사결과, 이 판결 이래 지금까지 경영판단 관련 배임죄 판례는 37건으로 이 중 2002도4229판결을 인용하며 여기서 제시한 방법에 따라 실제 경영판단이 있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것은 절반정도인 18건에 불과했다. 또한 37건 중 같은 사안을 두고도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여부에 따라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판례가 12건이나 되었다.
물론 구체적 개별사안에 따라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여부와 유무죄 판단 방법이 다양할 수밖에 없어 판례동향을 수치화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법원이 일관되게 경영판단 원칙을 수용하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배임죄 관련 무죄율이 일반 범죄 무죄율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는 것도 배임죄 적용을 두고 검찰 및 법원 간 판단기준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경련은 헌재의 합헌취지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배임죄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형법상 배임죄 조문에 명문화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일반범죄 조문에 기업 경영활동과 관련된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 하는 것은 체계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기업활동을 다루는 상법에 명문화하여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에서도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계류 중이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경영실패가 아닌 사익취득을 위한 의도적 행위에만 배임죄를 적용해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재의 합헌취지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