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서정시학작품상 수상작 '봄바람이 불어서'를 비롯하여 모두 61편의 작품이 실린 이 시집은 비교적 짧은 시편들로 이뤄져 두께는 얇지만 따뜻하고 편안하다. 그의 시는 세계의 대상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하며 우리를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이끈다
"돌아와 나흘을 매어놓고 살다//구불구불한 산길에게 자꾸 빠져들다//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해 질 무렵까지 말뚝에 묶어놓고 나를 풀밭을 염소에게 맡기다//울 아래 분꽃 곁에 벌을 데려오다//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 웃다//이들과 주민(住民)이 되어 살다"([귀휴(歸休)] 전문)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