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밭갈이 풍경

2015-03-09 15:13
  • 글자크기 설정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소로 밭을 가는 풍경을 보고

비탈에 기대
쟁기질을 한다 푸르게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기억들 혹은
애써 잊으려 했던
지난 겨울의 저린 추위까지
이제 파랗게 일어나 새싹이 될 때

비탈밭 몇 뙈기 피붙이처럼 아껴 살았던 사람들의
헤진 속살이 쟁기 끝에 저며지는
세월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아픔 구석
구석진 아픔 갈피를 뒤적여 밭갈이를 한다

단내 나는 콧등은 코뚜레에 끌리고
더운 등짝 가득 멍에를 지고 내가 가는 곳
언제 그곳이 하늘이었고 구름이었겠는가
언제나 거친 속까지 보드라워 실핏줄 도는 흙
사람도 소도 모두 소가 되고 사람이 되어
한 평생 더불어 흘러가는 곳은
그대들 모두 씨로 트고 어느 날 꽃으로 필
언제고 부벼 살아가도 남을 흙이었고

--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자 마을 밭가에서 푸릇푸릇 새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여행객들은 자동차를 멈추고 밭에 들어가 허리를 숙이고 냉이를 찾는다. 밀레의 저녁종과 같은 풍경이다. 때론 봄 햇살이 눈부시다. 봄볕은 겨우내 얼었던 나뭇가지에 불을 놓는다. 화려하지도 않고 색깔도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봄볕이 붙어 타는 것처럼 눈부시다. 이제 곧 물이 오르고 잎이 나겠지. 그 한쪽에서 농부가 소를 몰고 밭갈이를 한다. 눈으로 꽁꽁 얼어있던 거친 땅을 헤쳐 놓으니 속살은 부드럽다. 쟁기질에 함께 부서지는 봄볕이다. 이렇게 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큰 축복이다.
하지만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에게 봄은 쟁기질을 할 때다. 부지런해져야 한다. 그렇게 밭을 갈고 한 해를 시작하는 수고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도시에서 내 꿈은 늘 하늘에 있었고 구름을 타고 있었다면 이젠 낮추어 땅과 흙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흙일을 즐거워하고 기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귀농귀촌이 재미있고 성공적이다. 그래서 귀농귀촌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퇴 후 귀농귀촌 하여 새로운 싹이 트고 꽃이 피려면 흙의 속살을 구석구석 쟁기질하는 수고로움과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그 일이 즐거워야 한다.

밭갈이풍경[사진= 김경래 대표]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