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SBS 제공]
아주경제 이정주 기자 = 17일 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마지막회에서 주인공 박정환은 이태준과 윤지숙 모두를 감옥에 보내며 복수에 성공했다. 죽음을 앞둔 박정환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자신의 딸인 예린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한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 굳이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매회 등장한 지나치게 잦은 반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뿐. 물론 이마저도 ‘드라마’의 오락적 요소를 고려했을 때 기꺼이 용인되는 부분이다.
'펀치'의 장점을 꼽자면 탄탄한 사회구조 비판적 스토리, 촘촘한 연출, 김래원 조재현 박혁권 최명길을 비롯한 배우들의 명불허전 명연기 등 다양하지만 특히 모든 등장인물의 갈등 속에 공통적으로 자리잡은 구도가 눈에 띈다.
주인공 박정환을 비롯해 이태준, 윤지숙은 물론이고 박정환의 절친 이호성에 심복 최연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인물들이 자의든 타의든 최악과 차악(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욕망과 혈육 사이에 선택을 강요 당한다. 인물들이 각각 선택한 수많은 길들이 엇갈리고 충돌하면서 긴장이 형성되고 고조되며 반전을 도모한다.
◆최악과 차악
주인공 박정환도 처음부터 권력만 쫓는 검사는 아니었다. 박정환은 초임 검사 시절, 의욕적으로 공정 수사에 매진하지만 직속상관인 윤지숙은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기 위해 박정환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박정환은 윤지숙에게 대항하기 위해 이태준이라는 또 다른 동아줄을 잡으면서 인생의 항로가 급격히 바뀐다. 이후 박정환은 늘 자신에게는 최선이 아닌 최악과 차악 사이의 선택지만 존재한다는걸 깨닫고, 정의보다 출세지향적인 삶을 추구한다.
박정환의 절친 이호성도 마찬가지다. 원칙주의자인 호성은 자신에게 최악의 선택지인 이태준을 검찰총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차악인 윤지숙과 손을 잡는다. 결국 차악이라는 선택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박정환과 이호성 모두 뒤늦게 깨닫지만 때는 늦었다. ‘차악’도 결국 ‘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욕망과 혈육
등장인물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게 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욕망과 혈육 사이의 선택’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세속적 욕망을 강렬하게 추구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혈육’ 앞에서 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는 모습을 보인다. '혈육'을 지키려는 원초적 본능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투영한다.
대표적으로 주인공 박정환은 윤지숙 아들의 병역비리를 조사,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과 관련된 국제초등학교 부정입학 문건이 알려질까봐 윤지숙과 협상을 시도한다.
이태준의 오른팔이었던 조강재도 마찬가지다. 승승장구하던 조강재는 딸이 아빠의 실제 모습을 알고 실망할까봐 박정환의 협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태준도 자신의 형인 이태섭의 살인죄를 덮기 위해 검찰총장 자리를 내려놓고자 한다. 앞서 이태섭 역시 동생인 이태준의 앞날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 형의 자살 이후 이태준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모습으로 욕망과 권력에 집착하는데, 권력 자체를 쫓기보다 오히려 형의 빈자리를 욕망으로 채우겠다는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혈육형 욕망의 정점은 윤지숙이다. 불법을 자행해서라도 아들만은 보호하고 싶은 욕망이 파멸을 자초한다. 검찰개혁의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이태준을 몰아내고, 자신도 총리를 거쳐 더 큰 권력을 향해 달려가고자 했지만 아들의 병역비리가 발목을 잡는다.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 갈등하던 윤지숙은 아들을 위해 욕망을 내려놓는다. 나아가 살인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되며 이태준을 넘어서는 최악으로 변질된다.
여타 드라마에서 보이는 선악이 명확히 구분된 세상과 달리 박경수 작가의 작품 속 현실에서는 선과 악이 혼재돼 있어 단칼에 구별해 내기 쉽지 않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처럼 말이다.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를 그려낸 것, 시청자를 사로잡은 '펀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