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받지 않았어도 되는 비난을 자초했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방영 전 공개된 티저 영상이 표절임이 밝혀져 치욕스럽게 시작해야 했고, ‘신의 선물-14일’은 실종 아동을 찾는 전단지 형태의 홍모물을 온라인에 배포해 무리한 홍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강남경찰서와 경찰청 실종 아동 찾기 센터 신고 번호를 실제 번호로 사용해 비난은 더욱 거셌다.
이처럼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14년 SBS 드라마를 돌아보자.
월화극, 수목극도 그러했지만 주말극의 참패는 더욱 컸다. 송승헌에게 연기 대상을 안긴 MBC ‘에덴의 동쪽’과 같은 굵직한 시대극을 집필한 나연숙 작가와 ‘눈물의 여왕’ 황정음이 만난 ‘끝없는 사랑’은 시작은 호기로웠지만 지지부진한 전개와 반복되는 설정으로 시청자에게 외면받아 애초 40부작으로 기획됐지만 37부 만에 막을 내렸다.
‘기분 좋은 날’은 막장 요소를 제거한 청정 드라마를 표방해 호평받았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시안 게임 중계로 왕왕 결방되면서 몇 없던 시청자마저 이탈하자 계획보다 6부작이나 줄여 44회 만에 종영했다.
조기 종영을 면한 작품도 연이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자 SBS는 내년 상반기 안에 주말 한편을 폐지하기로 했다. SBS는 주말 오후 8시 45분, 9시 50분에 연이어 주말드라마를 편성했는데 8시 45분대에는 이미 계획된 미니시리즈 2편이 종영한 뒤에는 더는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창사 이후 23년 동안 뉴스에 이어 방송됐던 SBS 주말드라마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
침체돼있던 SBS 드라마국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리라 고대했던 기대작도 줄줄이 참패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연기하며 사극의 전설이 된 한석규가 ‘비밀의 문’에서 영조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대중은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전작에서 큰 재미를 본 탓일까? 한석규의 연기는 ‘뿌리 깊은 나무’ 재방송을 보는 듯했고, 제대 후 첫 복귀로 주목을 받은 이재훈은 몸이 덜 풀린 듯 한석규의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역사를 뿌리째 흔드는 설정과 억지스럽게 끼워 넣은 러브라인이 집중력을 떨어뜨린 탓에 4.0%라는 보고도 믿지 못할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한류의 주역’ 권상우 최지우의 재결합으로 제2의 ‘천국의 계단’을 기대했던 ‘유혹’은 빚더미에 오른 남자가 3일 동안 함께 있어주면 10억을 주겠다는 여자의 유혹을 받아들인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불륜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데에도 실패했을뿐더러 욕이라도 실컷 할 수 있는 시원한 막장극으로도 발전하지 못 한 채 그저 그런 드라마로 남았다.
비의 복귀작이자 그룹 에프엑스 멤버 크리스탈의 연기 데뷔작인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가요기획사를 배경으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대거 포진돼 장기를 살린 연기돌의 주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띠동갑인 두 주인공 사이에서는 캐미스트리는 없었고, 아이돌의 연기력은 참아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판타지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워 주인공끼리 몸이 바뀌는 ‘시크릿 가든’이나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식의 새로운 설정을 기대했지만, 비가 크리스탈이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거나, 갑자기 크리스탈이 탄 버스가 멈춰 비와 만난다는 식의 부족한 개연성을 메꾸는 무기로 사용됐다. 3%대의 시청률이 이상할 것이 없는 이유다.
미니시리즈 ‘별에서 온 그대’와 아침드라마 ‘청담동 스캔들’은 절망적이었던 SBS 드라마국의 숨통이 됐다.
MBC ‘내조의 여왕’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스타작가 대열에 오른 박지은 작가의 톡톡 튀는 대사와 고막을 애무하는 목소리를 가진 김수현,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전지현, 디테일에 강해 ‘장테일’일 이라 불리는 장태유 감독으로 무장한 ‘별에서 온 그대’의 독주는말 그대로 ‘어마무시’했다. 한국에서 최고 시청률 28.1%를 기록한 것은 드라마가 이룬 성과 중 가장 작은 것이다. 전지현의 ‘먹방’덕에 중국에서 분 치맥 열풍은 조류 독감도 막지 못했다. 오프닝 영상이 미국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그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처럼 보였고, 강경옥 작가의 만화 ‘설희’ 표절 논란이 일었지만 그 위용을 흔들지는 못했다.
‘청담동 스캔들’은 조용하지만 치열한 아침드라마의 절대 강자다. 상류 사회의 욕망을 풀어낸 거침없는 전개로 풀어내 경쟁작들이 10%대를 웃도는 시청률을 보일 때 홀로 20%를 넘겼다. 아침드라마가 시청률 20%를 넘긴 것은 3년 만이다. 지금도 매회 제 기록을 스스로 경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