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6년 황제 요제프에 의해 궁정소속 작곡가로 발탁된 살리에리는 이후 ‘다나이드’ ‘오라스’ 등 40여곡에 이르는 오페라, 발레음악, 교회음악 등을 남겼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로 인해 천재에게 가려진 비운의 둔재로 잘못 알려지면서 2인자의 서러움을 뜻하는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영화 ‘상의원’(감독 이원석·제작 영화사비단길)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대결 구도를 그대로 차용했다. 하지만 한국 고전식으로 바꾸면서 여기에 독특한 유머 코드를 넣은 영화로 탄생했다. 음악이 아닌 조선시대 왕실 의복을 주제로 한 점 또한 다르다.
모차르트 격인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 역은 배우 고수가 맡았다. 이공진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시기심이 들끓는 왕실 어침장 조돌석은 한석규가 연기했다.
“예전에는 천재라고 생각되는 배우와 연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천재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국판 ‘아마데우스’라는 평에 대해서는 “아마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공진을 천재라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인가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배경이 조선시대인 만큼 관계, 신분, 지위, 권력 등 보이지 않는 선들로부터 자유로운 인물로 분석했다. 고수는 “요즘엔 다르다고 하면 틀렸다고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고수는 말 그대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특별히 머리를 길렀다. ‘상의원’에서 고수의 머리는 고수 본인이 기르고 기른 것이다. 그래도 머리는 아팠다고.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아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한복의 아름다움을 볼거리로 제공하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많은 고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죠. 시나리오가 잘 읽혀져서 감독님을 만났어요. 독특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남자사용설명서’를 봤죠. 한국에서 보기 힘든 영화였기에 그 시도나 아이디어가 놀랍더라고요. 이 감독님이 사극을 찍으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죠. 첫 인상이요? 유쾌하고 농담 잘하는 밝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시더라고요. 진심이 통했다고 할까요? 말씀을 듣고 출연을 결정했죠.”
“제 얘기를 누구보다도 수렴해 주셨다”는 고수는 “얘기한 부분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여러 가지 기발한 발상들이 터져나왔다”고 덧붙였다.
‘상의원’에서는 ‘짝퉁, 깔창, 뽕’과 같은 현대에 생긴 단어들이 살짝 변형돼 등장한다. 고수는 이를 ‘감독이 의도한 바’라고 평하며 “완성본을 봤을 때 굉장히 좋았다. 분명한 색깔을 갖고 계신다. 현대극이 아닌 사극에 판타지를 사용하는 건 우리 감독님 말고는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볼 수 있는 동화와 같은 영화”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영화 속 이공진은 한복을 개량해도 너무나도 개량한 ‘패셔니스타’지만 고수 본인은 아니라고 귀띔했다. “평소 무난한 걸 좋아한다. 학창시절에는 튀는 옷을 입었지만 점점 무난해진다”면서 웃었다.
“그리고 다른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토끼가 나오니까요. 하하.”
기발한 ‘상의원’ 토끼는 극장에서, 15세 이상만 확인할 수 있다. 15세 이하는 부모님을 대동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