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러시아 보수 세력과 정권 내부에서 이번 루블화 폭락 사태에 대한 ‘미국 음모설’이 급격히 퍼지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 평론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자신의 SNS에 “루블화에 대한 공격에는 국가체제 전복이라는 목적이 있다”는 글을 게재해 미국이 루블화 폭락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뉴스전문채널 러시아투데이(RT)는 미하일 프라드코프 SVR 국장이 지난 4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의도적인 경제 제재, 국제 유가 조작을 통한 루블화 공격으로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총리 출신인 프라드코프 국장은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려는 미국의 기도에 강력히 경고한다”며 미국의 그런 기도는 기밀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국이 러시아 체제 전복을 노리고 있다고 보느냐는 프랑스 TV 방송국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도 4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가진 연례 기자회견에서 "과거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며 "사람들은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우리는 어떤 시련에도 맞서 이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외교전문가 드미트리 트레닌은 “크렘린은 미국의 목적이 경제제재로 고통을 준 뒤 푸틴정권을 전복시키려하는데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러시아 여론조사센터에 따르면 현재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5%를 유지하고 있으나 경제상황의 악화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5일 연평균 원유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러시아의 성장률은 -4%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러한 상황이 미국 음모론으로 포장되면서 푸틴 정권이 경기침체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루블화 폭락 사태가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상황과 흡사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러시아는 현재 40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준비고가 있으나, 국제유가 하락과 루블화 폭락이 지속될 경우 장기정권을 꿈꿔 온 푸틴 대통령의 전략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국내에 퍼지고 있는 ‘미국 음모설’은 이러한 정권 내부의 초조함이 반영된 것이라 분석하는 전문가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