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실적으로 평가하겠다.”
지난 9월 취임한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연공서열로 상징되는 회사의 임금·직급체제를 바꾸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모든 것을 떠나 오로지 일을 통해 거둔 실적, 성과로 임직원의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1972년 설립된 현대중공업은 불과 11년 만인 1983년 건조량 기준으로 조선업계 세계 1위에 올라선 뒤 31년째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업을 넘어 개별 업종에서 단일 기업이 30년 이상 절대 1위를 지키고 있는 사례는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에게는 이러한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기간 독점적 지위가 고착화 되면서 조직의 혁신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혁신 정신은 사라지고 ‘당연히 1위’라는 타성만 남았다는 것.
창업주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조선소를 세울 때에는 전국에서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을 모아 그들을 기능공, 전문가로 육성했다. 한 사람의 손길조차 부족한 시절이라 울산으로 오는 사람 누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소는 회사이자 교육장이었고, 가족들을 돌보는 사회적 안정장치의 역할을 담당했다.
나아가 회사가 안정 되고 인재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능력이 뒤쳐진 사람은 퇴출되고 새로운 인재가 등용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계 1위를 질주하는 현대중공업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용납되지 않았다. 호봉제와 더불어 자동 승진제의 굴레 속에서 직원들의 근속연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특진과 승진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젊은 직원들은 좌절감을 앉은 채 회사를 떠났다. 경직된 문화는 현대중공업이 자랑했던 생산의 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쳤고, 결국 지난 2~3분기를 합쳐 3조원이 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따라서 권 사장은 쓰러져가는 현대중공업을 되살리려면 조직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위해 1차로 단단히 굳어진 인사제도를 바꾼 것이다. 실적을 통해 능력을 입증하는 사람에게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인센티브와 승진 기회를 부여하는 한편, 그렇지 못한 직원에게는 책임을 지우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중공업을 삼성전자와 애플처럼 빠르고 창조적인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당장 노조는 물론 임직원들의 거부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부분파업 등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 이기내지 못하면 현대중공업은 당장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감마저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권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반드시 조직 혁신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권 사장의 개혁에 많은 직원들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만, 젊은 직원들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고인 물에 안주하는 회사에 실망한 직원들은 이번 권 사장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