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청와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인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후한 말 국정을 농단한 열 명의 내시를 일컫는 ‘십상시(十常侍)’ 실체를 둘러싼 의혹에서 촉발한 국정농단 파문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與 이재오 “김기춘·비서진 3인방 사퇴 촉구” 직격탄…요동치는 與
범야권이 연일 정윤회 문건 의혹 규명을 위한 상설특별검사제 및 국정조사 도입을 고리로 박근혜 정부를 옥죄는 가운데 5일 여권 내부에선 비주류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 뒤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청와대가 이미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느냐. 그건 이미 대통령 리더십, 국민적 도덕성 등에 상처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고 힐난했다.
그는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총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문건 유출 등 보완 허술에 대한 청와대 당사자들, 책임자들, 비서실장이든 수석이든 비서관이든 그 라인에 관계되는 사람들은 일단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검찰을 직접 겨냥,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검찰이 진실을 어느 정도 밝힐 수 있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야권이 주장하는 상설특검 등과 관련해선 “야당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며 “우리가 야당 돼도 만날 그렇게 했으니까요”라고 잘라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범야권이 파상공세를 편 박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 의혹 제기에 힘을 실은 셈이다.
반면 한때 이 의원과 상하이발(發) 개헌 연대를 형성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등 이슈 분산에 힘을 쓴 뒤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국정 현안이 미뤄지거나 국가 리더십을 흔드는 그런 시도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검찰에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이 일에 대한 결론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 국면에서 보수진영의 미래권력인 ‘김무성-이재오’의 비박(非朴)라인이 김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거취를 놓고 엇박자를 냄에 따라 향후 여권 내부 권력투쟁이 극에 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전광석화 같은 수사에 나선 檢, 문고리 3인방 소환은 예외?
눈여겨볼 대목은 검찰 수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여권 분열의 단초는 물론 범야권에 대여공세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검찰은 전날(4일) 청와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박관천 경정(전 행정관)에 이어 이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소환조사를 단행했다.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와 권력암투를 벌인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라인이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같은 사건의 배당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형사1부(명예훼손 수사)-특수 2부(문건 유출 수사)’로 나눠 수사 중인 검찰은 유독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소환 조사 여부에 대해선 확정을 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면피성 조사 의혹도 이 지점에서 나온다.
검찰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해보면, 문건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경찰청 정보분석실 소속 최모·한모 경위는 피의자 신분 조사 후 사법처리할 가능성이 높고, 김 실장과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서면조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새정치연합은 이날 “검찰이 십상시 3인방을 즉각 소환 조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살아있는 권력의 수족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소환 조사를 촉구했다.
김정현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미 국민들은 이 사건을 특수 1부와 형사 1부로 따로 따로 나눠 배정한 데서 물 타기 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십상시의 난(亂)’을 조사하는 데 사태의 진원지인 ‘십상시’의 핵심들을 조사하지 않는다면 유령 조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천명하고 청와대가 보낸 조사 결과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받아쓰기 검찰’과 다름없다”며 “힘 있는 쪽은 뒤로 빼돌리고 힘없는 쪽은 전광석화처럼 수사를 하니 ‘권력의 시녀’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 ‘與 분열-檢 편향 수사’에 朴 대통령 파상공세
새정치연합은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논란으로 ‘여권 내부 분열-검찰 편향적 수사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자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특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새누리당을 겨냥, “국가권력 사유화가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진상규명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며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새누리당은 운영위원회 소집에 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사실무근이라고 하면 검찰 수사가 실체를 밝히는 게 아니라 대통령 지시로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릴 것이 뻔하다”고 비판한 뒤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비호세력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꼬집었다.
차기 당권 주자인 문재인 의원은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1차 책임은 박 대통령”이라며 “국정농단을 단순 문서유출로 축소하려던 대통령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힐난했다.
문 의원은 박 대통령을 향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철회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며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도록 측근과 비서실장을 정리해야 한다. 빠르고 단호한 결단이 위기에서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정윤회 문건 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조 전 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조 전 비서관은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직속상관이었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오전 9시58분께 검찰청사에 나타나 “주어진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했고 가족과 부하직원들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며 “검찰에서 진실을 성실하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