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민개혁 '산 너머 산'

2014-11-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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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수 년 전에 취재했던 한 불법체류 한인 가장이 생각난다.

새벽에 들이닥친 이민단속국 요원에게 붙잡혀 구치소에 갇혀 있던 그를, 한인 인권 변호사가 어렵게 꺼내 줬더니 가족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추방당하는 날까지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한인사회가 모금까지 해서 도와줬건만 변호사에게 전화로 한마디만 남긴채 잠적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불법체류자를 구제해 줄 때가 올 거라며 그때를 기다리며 살겠다며 한국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 가족을 법을 어겨 가면서까지 미국 땅에 붙들어 놓게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절실하고 절박했던 그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그런데 그 한인 불법체류자 가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일이 드디어 이뤄졌다. 5년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0일 이민개혁 행정명령 조치를 단행한 것. 이로써 미국내 500만명에 달하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구제될 수 있게 됐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는 11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조치로 이 가운데 44% 정도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986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 시행됐던 이민개혁법 이래 28년 만에 시행되는 최대규모라고 한다.

이번에 단행된 행정명령으로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인 자녀를 둔 성인 불법체류자는 3년 동안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취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대신 오바마 행정부는 국경 밀입국 및 중범죄 전과 이민자 추방 정책은 더 강령히 추진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한인이민단체를 비롯한 이민자옹호 단체들은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조치를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미주 한인단체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 있는 서류미비, 그러니까 불법체류 한인 청소년은 3만3000명, 그리고 성인 불법체류자는 18~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한시적이라 아쉽다며 이회가 오바마 대통령과 협조해 포괄적인 이민개혁이 단행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미국 정국에는 찬바람 쌩쌩 불고 있다.

일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행정명령 단행 전 US투데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6%에 해당하는 미국 국민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을 통해 이민개혁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했다.

또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60%가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을 지지했지만 공화당 지지자의 76%가 의회의 입법 절차를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오바마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11월 4일에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원과 하원을 모두 공화당에게 뺏긴 상황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을 경우 자신의 역점사업 중 하나였던 이민개혁법이 의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이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이민개혁 행정명령 단행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 단행을 대통령의 권한을 벗어난 초헌법적 조치로 규정하고 상하원을 장악한 내년 차기 연방 의회에서 행정명령 무효화를 위한 입법 공세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강경 보수 의원들은 오는 12월 11일이 처리시한인 정부 예산 임시 지출법안을 저지함으로써 정부 폐쇄까지도 불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민개혁을 둘러싼 여야간 갈등, 국민 내부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들에 의해 일궈지고 발전된 나라인 만큼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불법 체류자라 하더라도 가족이 서로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배려의 조치들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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