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캔버스에 칠해진 색면의 층위나 파편화된 형상들의 배열 구조를 통해 빛의 세계를 연출해 내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자연의 빛이 평면의 색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형식과 상징이 곧 빛의 구조와 정신이다.
박현수의 조형행위는 캔버스에 물감을 드리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번지고, 밀어내고, 섞이고, 뒤덮고,스며들고, 흐르고, 건조되는 물감의 생리현상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화려한 색채의 융합물이 화면에 고착되고 완전히 건조되었을 때 다시 캔버스 전면에 물감을 얹힘으로써 복합적인 층위를 만든다.
폼페이 전체를 뒤덮은 베수비오의 화산재처럼 두꺼운 물감 층은 강한 물성과 더불어 어떤 기억을 지닌 평면으로 변모하니 이제 두 번째의 단계가 마무리 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면 작가는 반쯤 건조한 물감의 표층을 고무 칼로 걷어내면서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집중과 긴장 속에 발굴과 탐험의 시간이 흐르면서 새겨진 이미지의 파편들은 다시 색채로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들은 이내 기호가 되어 역사와 우주와 생명으로 향한 길을 열어준다.
이른바 색으로 전환된 빛의 구조 속에서 달걀형의 청동향로와 그 주변에 피어나는 광휘가 모습을 드러내며 나아가 별빛으로 가득한 우주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박현수의 그림은 평면회화가 할 수 있는 온갖 실험을 거치며 탄생한 것이며 물감의 지층을 통해 정신성이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예술세계는 'Bloom'의 시절을 맞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우종미술관(전남 보성군 조성면)에서의 박현수 개인전은 지난 10여 년간의 빛 작업을 망라하고 있다. 미술관 측이 전시회의 제명으로 붙인 ‘The Bloom’은 그의 작품성과를 함축하는 용어로 적절해 보인다. 꽃이 만발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자 빛의 예술 10년을 통해 절정기에 접어든 작가의 예술적 성과를 암시하는 의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빛의 예술 10년을 결산하는 이번 우종미술관 전시 이후에 작가가 어느 향방으로 실험의 키를 세울지 사뭇 주목된다. -<전시서문중 발췌>. 우종미술관 박현수 개인전은 2015년 1월 18일까지.(061)804-1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