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제조업은 해외 제조기업에 비해 성장성이 둔화된 모습이다. 추후 중국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한국 제조업은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는 중국 제조업의 도약으로 한‧중 간에 유지돼 온 중간재-완제품 무역구조의 패러다임이 바뀐 데서 기인한다. 중국이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며 한국을 밀어내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대중국 투자를 늘리며 중국 수요에 대한 단꿈에 젖어 있다.
◆한국의 중국 투자, 세계 트렌드 역행
국제금융센터 조사 결과, 외국인의 대중국 직접투자는 2012년부터 올해 9월까지 3년 연속 감소했다. 특히 서비스업보다 제조업 투자가 더 크게 위축됐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2.2%로, 이전 10년간 증가율(+10.9%)과 대조된다.
이와 달리 한국 기업의 경우 최근 3년간 대중국 직접투자가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대중 투자는 2000년대 중반 5년 연속 감소하다가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7.4%에 달했다. 더욱이 제조업 투자 집중도가 더욱 심화돼 세계 트렌드에 역행했다.
올 상반기 한국의 대중국 제조업 투자 비중은 역대 최대 수준인 88.6%에 달했다(최근 10년 평균 77.0%). 이는 전체 외국인의 대중국 제조업 투자 비중(33.9%)은 물론, 한국의 전체 해외직접투자에서의 제조업 비중(31.9%)을 모두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다.
즉, 한국 기업 중에서도 특히 제조업이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투자의 배경에는 중국 경기회복 이후 수요 성장이 역내 공급증가분을 흡수하고도 남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제조업이 중국 투자를 늘린 2012년부터 성장성이 빠르게 둔화되면서 해외 제조기업보다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 제조기업의 성장성은 2012년을 고비로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한국 제조기업은 둔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1.5%를 기록했던 한국 제조기업의 총자산증가율은 2012년 1.2%, 2013년 3.3%로 급락했다. 전 세계 제조기업의 총자산증가율은 2012년 3.7%를 기록한 이후 2013년 5.1%, 2014년 상반기 4.8% 등으로 완만하게 회복했다.
◆전자·금속·화학, 막강해진 중국 파워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고유벡터 중심성(세계 산업 가운데 영향력이 큰 산업 지표) 기준으로 1995년에는 미국 기업서비스와 독일 화학이 1‧2위였으나, 2011년에는 중국의 전기전자와 금속·화학이 각각 1‧2‧4위에 등극했다. 이들 산업은 한국의 주력 제조업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경합도가 증가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례로 전자업계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중국의 고급형 및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가 현지 후발주자에 밀리며 부진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애플은 중국 진출을 서두르지 않고 프리미엄에 집중하며 현지 업체와의 경쟁을 피해왔다. 결과는 실적이 말해준다. 삼성전자가 3분기 7%의 저조한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반면, 애플은 그 4배나 높은 27%를 유지했다.
화학업종도 중국 수요를 불황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지만, 글로벌 화학기업들의 경영실적은 양호한 수준으로 발표되고 있다. 한국 화학업계는 지난 2011년까지 중국 수요를 바탕으로 ‘신르네상스’를 경험한 바 있지만 이후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발표되고 있는 중국의 화학 수요 관련 지표들을 보면, 경제성장률이나 산업 생산 증가율 등이 과거 고속(9~10%대) 성장에서 중고속(7~8%)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연착륙하고 있을 뿐 특별히 침체됐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의 범용 석유화학 수입량은 2010년 3900만t에서 정체돼, 대중국 수출기업은 수요가 정체됐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중국의 생산능력 증가에 따른 자급률 상승으로 수입수요가 정체 또는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개선의 여지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위기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라며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최근에 부상한 이슈가 아니지만, 현재의 위기는 경기 순환적 불황에 따른 위기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경쟁력 위기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떤 기업은 조직 내의 상당한 고통과 리스크를 감당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고, 어떤 기업은 변동성 있는 경기상황에 일희일비하면서 ‘버티기 전략’으로 시간을 끌다가 점차 경쟁에서 도태되기도 했다”며 “어떤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명확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