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당사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은 온데간데없고 당·정·청과 야당만 참여하는 승자독식 게임으로 변질됐다.
20대 80의 게임을 넘어 1%가 99%의 의사를 결정하는 엘리트 정치인 셈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이른바 ‘배제의 정치’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 함의.
사적연금은 개인 A가 낸 돈만큼 노후에 받아가는 ‘적립식’ 구조다. 연봉 1억원을 받는 고소득층과 1000만원에 불과한 저소득층의 사적연금이 같을 수는 없다. 이것은 사법상의 법률관계는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다는 ‘사적자치 원리’, 즉 민법의 철학이다.
하지만 공적연금은 적립식이 아닌 ‘부과식’이다. 핵심은 사회적 연대다. 연금 ‘장기’ 납입자인 2030세대가 ‘단기’ 납입자인 60대 이상의 연금을 보전해주는 ‘세대 간’ 연대, 고소득층이 ‘더 내고’ 저소득층이 ‘덜 내는’ 세대 간 연대, 그것이 공적연금태동의 철학적 토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세대 갈등은 물론 공무원과 비(非)공무원 간의 첨예한 대립이다.
공직사회는 정부가 국가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공무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고 반발한다. 젊은 층은 국가를 향해 후대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부라고 비판한다. 고령층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룬 우리를 뒷방 노인네 취급한다고 힐난한다.
갈등을 야기하는 주범은 누군가. 제도권 정치다. 정부다. 국가다. 갈등을 조정을 상실한 정치권이 누군가의 배제와 희생을 담보로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원주의 사회인 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국가는 단순히 사회의 범죄 등을 막는 ‘국가주의적 국가’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 바로 배제 정치를 용납하지 않는 국가다. 엘리트 정치권이 이를 방기한다면 그 부메랑은 그 집단을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