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선미·홍성환 기자 =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살리겠다며 내놓은 '실험성 정책'으로 가계부채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저소득층·저신용층·다중채무자 등 ‘가계부채 고위험군’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반면 상환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면밀히 모니터링 할 것"이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계건전성을 상향시킬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비주택 구입용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2011년 43.2%, 2012년 50.6%, 2013년 50.9%, 올 1∼7월 53.8% 등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내집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 주택담보대출의 원래 취지가 퇴색하는 것은 물론 대출자 입장에서는 부채 부담이, 은행 측은 부실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문제는 생계형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더욱 확대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성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차주특성별 은행 가계대출 잔액 현황'이 그 근거다.
지난 8월 1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후 불과 한달만에 가계대출은 311조5000억원에서 316조로 4조5000억원 증가했다. 이중 연간소득 30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대출규모는 1조3000억원으로 전체의 30%에 달했다.
결국 정부가 정책 목적으로 내세운 주택시장 활성화와는 상관없이 빚에 빚을 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부실장은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나면 저소득층 가구 및 영세 자영업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생활비 대출을 받는 저소득층이나 사업비 대출을 받는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실제 주택담보대출처럼 빚이 자산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써서 없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상환 능력이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2분기 가계대출 잔액은 982조5000억원으로, 현재 추세라면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가계부채에 대해 "우려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가계부채의 절대적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지난 15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하가 가계부채를 늘리는 요인은 될 것이지만, 과거와 같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재승 KB투자증권 팀장은 "이미 가계대출의 고삐가 풀린 상황에서 두 번의 금리 인하로 부동산시장이 빠르게 활성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가계부채 급증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빚을 또다른 빚으로 돌려막는 다중채무자 문제에 대한 경고도 상당하다. 다중채무자의 숫자는 일부 줄었지만 이들이 지는 빚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다중채무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다중채무자 숫자는 2010년 말 318만명에서 2011년 말에는 336만명으로 늘었으나 지난 6월 말에는 다시 328만명으로 약간 줄었다.
그러나 채무액은 2010년 말 282조1000억원, 2011년 말 310조원, 지난 6월 말 317조3000억원으로 계속 증가 추세다. 1인당 채무액도 불어나고 있다. 2010년 말 8870만원에서 지난 6월 말에는 9670만원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미 커질대로 커져버린 가계부채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서는 소득 향상·일자리 창출 등 구조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진 부실장은 "단기적으로 저소득층이나 영세상인의 부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은 빚 탕감이나 채무 유예 등이 있지만 이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결국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확대해서 소득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