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영 기자 =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애착을 갖고 키워온 반도체와 제철사업을 모두 잃을 상황이다.
반도체는 매각이 임박했고, 제철은 경영권 상실 위기에 처했다. 시스템 반도체와 전기로제철이라는 국내 산업 불모지를 개척해왔던 김 회장의 뚝심이 끝내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이 거액의 사재 출연과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반도체와 제철사업이 결국 새주인을 찾게 됐다.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은 이날부터 동부하이텍 본입찰을 시작해 이번 주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또 동부그룹 채권단은 동부제철에 대한 김 회장의 경영권 포기 내용이 포함된 정상화 방안을 회사측에 제시한 상태다.
동부하이텍은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후 12년여 동안 한번도 흑자를 못냈지만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하면서 사업을 지켜왔다. 지난 2009년말 김 회장은 3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이듬해 1분기 재무구조가 개선된 동부하이텍이 분기 사상 첫 흑자 달성에 성공하기도 했다.
동부하이텍은 그러나 이후에도 연간 흑자 달성엔 실패해오다, 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김 회장이 눈물을 머금고 매각을 추진 중인 지금에서야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 1분기 흑자전환하더니 2분기에도 실적이 개선되며 첫 연간흑자 달성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부하이텍은 국내 유일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전문업체로서 메모리에 치우친 반도체산업 불균형을 해소해줄 보루로 여겨졌다. 이번 본입찰에서 중국과 대만의 반도체업체 및 재무적 투자자가 뛰어들 것으로 예상돼 어느쪽이 인수하든 산업경쟁력 약화 우려가 나온다.
시스템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79%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성장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전년대비 6% 수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파운드리는 이보다 높은 10%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동부제철도 김 회장이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고철이라는 자원을 원료로 철강을 만드는 이상을 현실화시키며, 국가경제 발전은 물론 후손들에게도 기여한다”는 큰 꿈을 품고 아껴왔던 회사다. 하지만 동부제철은 2009년부터 시작한 당진 전기로 사업의 1조3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비용과 시황악화 및 주원료인 고철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재무위기가 번져왔다.
이 가운데 김 회장은 동부제철 차입금 1조3000억원에 달하는 보증과 자택 등 전재산을 담보로 제공하며, 동부제철 지원자금을 수혈해왔다. 그 와중에 동부제철은 올 상반기 전년동기보다 3.3배 가량 오른 18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
채권단은 그러나 동부제철의 신규자금 투입과 채무유예, 출자전환 등을 조건으로 경영권을 가져오기로 했다. 김 회장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100대 1로 차등 감자하는 방식이다.
동부그룹은 반발한다. 분식회계가 발견된 것도 아닌데 차등감자를 통해 경영권까지 박탈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포스코에 대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판매가 실패하며 유동성 확충이 어려워진 것에 대한 산업은행측의 책임론도 제기한다.
한편, 동부하이텍과 동부제철이 이탈하면 동부그룹은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어 금융업 위주로 재편될 전망이다. 비금융계열사로 동부건설과 동부대우전자, 동부팜한농, 동부CNI 등이 남게 되며, 금융지주회사 격인 동부화재 아래 동부증권과, 동부생명 등 금융 계열사간 지배구조가 따로 형성돼 있다.
김 회장과 외아들인 김남호 부장은 동부화재 지분 각각 6.9%와 13.3%를 보유해 금융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