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국 관광객들에게 오산시 '궐리사' 알리자

2014-10-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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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사진,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공자(孔子)가 부활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 나이 마흔에 공자를 읽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공자의 사상을 통해 다시 예법을 회복하고 인간 사회의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인 것 같다.

중국인들 역시 공자를 찾고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공자는 봉건시대 인물이라는 이유로 잊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산동성 제남시 곡부의 공자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년간 수 천만명이 다녀가는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이제 공자 묘와 사당에 전통 예법으로 제향(祭享)을 지내고 있다.

이들이 재현하고 있는 전통 제향은 사실 오산의 궐리사의 공자 제향을 그대로 본딴 것이다. 공자묘의 제향 절차를 멸실한 그들은 오산 유림의 궐리사에 대한 제향을 배워갔다. 그러니 오산 궐리사의 유림이 오히려 공자의 본토에서 사라진 제향을 부활시켜준 것이다.

궐리사(闕里祠란 공자의 초상화를 모신 사당을 말하는 것이다. 궐 리가 바로 공자가 살던 마을의 이름이기 때문에 궐리사란 공자의 마을 즉 공자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 비록 공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초상화를 통해 살아있는 공자가 고향 마을 궐리(闕里)에서 공부하고 제자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마을 이름을 따서 초상화를 모신 것이다.

오산의 궐리사는 1792년(정조 16) 10월에 개혁군주 정조가 현재의 오산시 궐동에 건립한 것이다. 정조는 1789년부터 추진한 수원 신도시의 발전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원신도시를 조선유교의 중심지로 선포하고자 함이었다.

정조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유학의 종조(宗祖)인 공자의 성상(聖像)과 초상화를 하사하여 수원지역(오늘날 오산시)에 사당을 건립하여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의 모든 사대부들이 공경해 마지않는 유림의 터전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사실 이전에 궐리사는 충청도 노성에 존재하였다. 하지만 정조는 노성의 궐리사를 혁파하라고 지시하였다. 왜냐하면 조정의 허락없이 노론 신하들에 의해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노성의 궐리사는 사실 소론의 창시자인 윤증과 그의 제자들을 감시하고자 하는 그리 좋지 않은 의도로 설립되었다.

그래서 정조는 이 사당을 혁파하고 자신의 지시에 의해 건립된 오산의 궐리사만 남겨두게 하였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건립한 궐리사를 통해 백성을 위한 합리적 개혁을 실현하고 유학의 본질적 가치를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만큼 궐리사는 조선 유학의 상징이었다.

최근 한류로 인하여 엄청난 인원의 중국 관광객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로 인하여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오산시는 현재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공자의 진짜 사당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당국과 한국의 관광 회사에 적극적인 홍보를 하여 화성과 에버랜드를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을 궐리사로 유치하고 궐리사를 방문한 이들이 다시 독산성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유치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오산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알려주기를 기원한다.
(아주경제 김문기 기자 글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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