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관피아’로 인해 공공기관장 자리에 갈 수 없는 점을 이용해 정치권에서 요직을 맡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정상화는 당초 지난달 말에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관측됐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평가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10월 중순까지 밀린 상태다. 여기에 올해 안에 공석인 공공기관장 자리가 확대되면서 정치권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는 당장 올해 안에 50여명의 공공기관장을 선임해야 한다. 7개월 이상 기관장 공석을 둔 강원랜드를 비롯해 주요 기관장 선임을 올해 끝마쳐야 내년부터 정상적인 공기업 개혁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산하 기관장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비교적 산하기관으로 이동하기 쉬운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이번에 공모하는 공공기관장 공모에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후 한차례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기획재정부는 관세청장, 조달청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고위 공직자들이 산하기관 대신 자치단체 경제자문위원으로 선회했다. 울산·부산·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에는 기재부 출신 관료들이 자리를 잡았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산하 공공기관 8곳 기관장이 올 하반기부터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대폭 물갈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예전과 같은 관료출신 하마평은 찾아볼 수 없다.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한국남부발전, 한전KDN, 한국전력거래소, 한국가스안전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원자력문화재단, 기초전력연구원, 한국디자인진흥원 등 8곳 공공기관장 임기가 줄줄이 만료되는 시점이지만 ‘관료 츌신은 우선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관련 공공기관 역시 새로운 후임 사장으로 상위 부처인 산업부나 같은 공기업 출신이 임명되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세월호 참사 주원인으로 지목됐던 공공기관 관리감독 부실 여파 배경에는 '관피아'라는 낙하산 인사의 책임이 컸기 때문이다.
또 같은 성격을 지닌 공공기관 출신 인사도 배제될 전망이다. 과거 원전비리로 질타를 받았던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마피아'처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협력업체와 재취업에 대한 이목이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반면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비교적 운신의 폭이 자유롭다. 최근 정치권 출신 공공기관장 선임이 늘어난 것도 관료 출신보다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배경이다.
이미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위원단을 지낸 공명재 계명대 경영학과 교수가 수출입은행 감사에 임명됐다. 또 8월에는 대선캠프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자니윤씨가 관광공사 감사로 내려갔다.
최근에는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선출돼 정피아 논란이 불거졌다.
공공기관 고위 관계자는 “해당 기관에서 관료나 정치권 출신을 배제하는 획일적 기준을 세울지 귀추가 주목된다”며 “전관예우와 민간, 학계 등 출신에 연연하지 않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전문성·능력 검증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