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장봉현 기자 = 전남 여수에서 염산을 실은 화물차가 전도되면서 유독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유독물질 운송차량 사고에 출하시스템 개선 등 근본적인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5일 전남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0시15분께 여수 해산동 도로에서 염산을 실은 2만2000ℓ 탱크로리 차량이 전도돼 넘어진 차량에서 염산이 흘러나왔다.
이 사고로 운전자 박모(52)씨가 숨지고 염산이 빗물, 공기와 반응하면서 발생한 염화수소를 흡입한 주민 6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숨진 박씨는 한화케미컬의 요청으로 이날 0시 10분께 K화학 공장에서 염산을 싣고 나가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염화수소는 강산성 유해물질인 염산이 누출돼 공기와 만날 경우 기화현상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가스다. 부식성이 강하고 대기 중에 노출될 경우 주변 식물 잎이 마르고 가축은 호흡기 질환이 생긴다. 인체에 노출될 경우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
여수국가산단에서는 그동안 나프타를 실은 탱크로리가 크레인과 충돌해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을 비롯, 유독성 황산을 싣고 나오던 탱크로리가 넘어져 황산이 도로에 유출되는 등 자칫 심각한 인명 피해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산단 인근 주민들로서는 언제, 무슨 사고가 터질지 좀처럼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들 차량들이 사업장을 나왔기 때문에 공장 측은 운전자 또는 판매처의 잘못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사업장 밖에서 유독물질을 운반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운전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화학 관계자는 "판매처인 한화 측이 출하시켜 달라고 한 것으로 슈퍼에서도 물건을 구입해 간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조차 독극물 등 유독물질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는 '도로 위를 달리는 시한폭탄'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음에도 방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화학물질 운송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같은 사고는 운전자의 부주의도 있겠지만 제조회사의 출하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여수산단에서 생산되는 유독물질을 장거리 수송하는 한 운전자는 "운전자들이 출하 물량을 싣기 위해 도로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K화학의 경우 염산을 24시간 출고 하는데 경비실에서 번호표를 받아 14시간 대기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 운전자는 "기름 값 때문에 시동도 꺼놓고 도로에서 무작정 대기를 하는 실정으로 한여름에도 모기를 뜯겨 가면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 운전자의 피로도는 아주 높다"고 말했다.
이는 출하 순번을 기다리기 위해 무작정 도로에서 대기를 하는 것으로 주야로 운행을 하는 위험물질 운전자들이 피로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특히 피로는 졸음운전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유독물질 유통 과정에 대한 관리 시스템 개선은 물론 운전자의 휴식, 규정 시간 출하 등 출하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