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신성재 전 사장의 현대하이스코 재직 시절을 되짚어 보면 그 또한 희생에 비해 수혜를 받지 못한 사위 경영인의 길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신 전 사장이 현대하이스코 사장으로 부임한 지난 10년간 ‘진정한 홀로서기’는 없었다. 그의 개인적인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철강산업이라는 업의 특성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철강업계 CEO로서 이러한 업계의 도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경영 스승’은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이다.
2002년 김 부회장의 입사로 첫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3년 후인 2005년 3월 각각 대표이사 부회장,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부회장은 2004년 INI스틸(현 현대제철)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보철강 인수전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계약서에 직접 사인함으로써 정주영 명예회장의 염원이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숙원이었던 일관제철소(쇳물을 생산하는 고로) 건설을 실현시킨 주인공이다.
철강업계 신년인사회, 철의 날 기념식, 철강업계 마라톤 대회 등 각종 행사에서 단상이나 무리들 중 맨 앞줄에는 늘 김 부회장이 모습을 보였고, 신 전 사장은 참관객 무리들 속에 서 있었다. 심지어 현대하이스코 사내행사에서도 되도록 행사의 주제는 김 부회장이 맡고 있다. 회사 경영에서 부딪치는 많은 고민거리는 그와 상의해 결정했으며, 마지막에는 스스로 결정했지만 회사를 떠나기 위해 과정에서도 김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제철 회장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그는 철강업계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김 부회장과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이 맏형 노릇을 해왔다. 신 전 사장에게 있어 김 부회장과 박 부회장이라는 존재는 ‘장인어른’과 동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믿고 따를 수 있었다.
김 부회장의 그늘 아래에서 10여년 동안 성장해 온 신 전 사장은 기 축적한 유·무형 자산을 바탕으로 ‘신성재의 현대하이스코’로 승화시키기 위한 꿈을 눈 앞에 뒀다.
즉, 당진 2냉연공장은 현대하이스코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한 전환점이었다. 당진 2냉연공장을 끝으로 회사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마무리 돼 이제는 수확만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정식 가동도 시작하지 못한 채 냉연사업 부문을 현대제철에게 양도한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사세 확장을 노리던 신 전 사장은 물론 현대하이스코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규모의 사업을 전개하고자 하는 의욕에 차 있던 신 전 사장으로서는 CEO로서 맛본 가장 큰 좌절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회장의 구상, 그룹의 정책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신 전 사장으로서는 “내가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자괴감을 떠 올릴 만 했을 것이다.
올 초 열린 철강업계 신년 인사회에서 김 부회장조차 동종 업계 인사들과의 대화하면서 “다 줬어. 남은 게 없어”라는 말로 아쉬움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이날 신 전 사장은 출장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