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저술한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는 자서전 출간후 논란이 일고 있는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해 당시 정부 정책을 관장했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과 강봉균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해 공개 질의를 던졌다.
신 교수는 26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이 책은 싸움을 붙이기 위해 만든게 아니었다”면서도 간담회 시간중 상당 비중을 책 내용이 ‘대우그룹 기획 해체’ 의혹을 제기하는 데 할애했다.
총 아홉 개의 질문중 경제관료들의 ‘대우그룹 기획해체’의 논거로 던진 핵심은 세 가지다.
먼저, 이 위원장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힌 “당초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이뤄지고 난 뒤 대우를 워크아웃에 집어넣을 계획이었다”는 대목과, 강 수석이 2003년 발간된 한 책과의 인터뷰에서 “빅딜 발표후 부산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 DJ(김대중 대통령)도 부쩍 삼성차 문제를 챙겼다.~(대우가) 나중에 워크아웃에 들어가더라는 한이 있더라도 대우가 일단 삼성차를 인수해 공장을 돌렸으면 하는 것이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언급한 대목이었다.
신 교수는 “그렇다면 정부는 왜 대우측에게 삼성과의 자동차 빅딜을 그렇게 종용했나” 대우측은 빅딜을 하면 묶인 자금줄이 풀릴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 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1999년 7월 발표한 대우 유동성 개선 자구방안을 통해 13조원의 사재와 담보를 내놓는 조건으로 정부측으로부터 10조원의 자금 지원과 8개 계열사 경영을 보장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1주일 늦게 4조원만 주면서 정부가 직접 김 회장과 대우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해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대우그룹의 유동성이 더욱 악화됐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 위원장은 회고록에서 ‘어차피 3조원 정도의 유동성이 더 확보된다고 해도 당시 대우의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는 당시의 약속과 상치되는 발언을 뒤늦게 했다”며, 결국 정부에서는 처음부터 3조원만 지원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더불어, 신 교수는 이 위원장은 회고록에서 김 회장이 1999년 10월 해외로 출국한 직후 이뤄진 대우에 대한 자산실사 결과 발표에 대해 “무척 공교로운 일이다. 나는 이 발표가 경솔했다고 생각했다. 결론이 너무 빨랐고,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회장 문책론이 불거지고 대우 워크아웃은 궤도를 크게 벗어나고 만다”는 점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던졌다.
그는 “당시 금융위원장 모르게 어떻게 이런 발표가 이뤄질 수가 있을까. 이 때문에 김 회장 문책론이 불거졌다고 하지만 김 회장은 ‘내가 돌아올 수 없도록 일부러 문책론을 만든 걸로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당초 이 위원장이 구상했던 워크아웃의 궤도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이 밖에 신 교수는 ‘구조조정론’의 실패, ‘부채비율 200% 규제의 근거와 효용성’, ‘제너럴모터스(GM)의 대우차 비밀 인수의향서’ 등에 대해 해명하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국제시장의 변화에 둔감하고 경험이 부족했던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국제금융자본의 논리를 추종해 국내 산업자본을 희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금융용어인 ‘자기예언적 실현’을 예로 들어 “문제가 있어서 걱정하기 시작하면 작은 문제가 크게 보여서 자금을 빼고, 그러면 문제가 더 커져서 결국 걱정이 실제가 된다. 경제관료들이 대우의 문제점을 알았다면 좀 더 조심했어야 한다. 이 위원장과 강 수석이 대우에 대해 우려만 했지 대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물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 수석은 책 내용이 공개된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차가 위험해진 건 김 회장이 자초한 일이다. 다른 그룹들은 부채비율 낮추려고 자구노력을 하는데 김 회장은 자구노력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반면 이 위원장은 침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