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프란치스코(78) 교황은 고통받는 사람을 그냥 치지 않았다. 계산된 행동이 아니냐는 의심도 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유가족 앞에 멈춰 선 것은 전혀 의도된게 아니다”며 손을 내저었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족 앞에 멈춰 선 '감동의 스킨십'이 연일 화제다. 카퍼레이드 도중 교황 옆에 있는 신부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라고 하자 차를 세우고 내린 것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수십만명의 인파속을 카퍼레이드 도중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노란 플래카드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곳, 세월호 유족 400여명이 모인 광화문 광장 끝에서였다. 유족들이 단식농성 장소에 서 있는 천막 지붕에는 노란색으로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는 글귀가 나붙었다.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숙연한 표정으로 변했고 덮개없는 차에서 교황이 내려섰다. '비바 파파' (교황 만세)함성이 울리던 주위는 순간 고요해졌다.
차에서 내린 교황은 유족들을 향해 손을 모아 짧은 기도를 올렸다. 단원고생이었던 딸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붙잡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세월호를 절대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자 교황은 "잊지않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또 김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서신이 담긴 노란 쪽지를 전달하고 교황의 손에 입을 맞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받은 쪽지를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그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전광판으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세월호 유족들을 만날때마다 환한 미소를 거두고 이들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교황의 모습에 유족들은 교황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김영오씨가 전달한 편지는 빡빡한 일정으로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고통받는 분이 전달한 편지는 꼭 읽는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를 해준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과의 '감동의 의리'는 방한내내 이어졌다.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교황은 첫날 만난 세월호 유족에게 진정성을 보였다.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으로 유족과 눈을 맞춘 그는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이후 교황은 유가족이 건넨 노란 리본을 그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고. ‘세월호 참사 순례단'이 900km를 걸으며 짊어지고 온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또 17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56) 씨에게 세례를 줬다. 세례명은 교황과 똑같은 프란치스코다.교황은 지난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이 씨로부터 세례를 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이와 관련, 롬바르디 신부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답을 주지는 않는다. 영적으로 관심을 두고 정신적으로 위로해줄 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