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두고 은행들이 앞에서는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외치지만 뒤로는 여전히 기존의 금융 관행을 유지한 채 보신주의에 얽매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금융시장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달부터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가 반영된 대출을 시행하고 있으며, 은행마다 평균 50~60개 기업에 약 250억원씩 자금을 빌려줬다.
하지만 TCB 대출을 받은 기업 중 절반 가량이 기존에 은행과 거래관계를 유지해왔던 곳으로 알려졌다. A은행의 경우 TCB 대출 기업 46곳 중 19곳이 기존 거래 기업이며, B은행 역시 14곳 중 9곳이 기존 거래 기업이다.
정부가 담보나 보증 없이 TCB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TCB 평가서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은행도 난처한 입장이다. 담보·보증이나 기존의 거래 이력조차 없는 기업에 기술력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IP) 담보대출도 마찬가지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IP 담보대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 시행하는 곳은 없다. IP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대출 부실이 발생한다고 해서 담보(IP)를 처분해 채권을 회수하기도 힘들다.
경제활성화의 일환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와 은행의 입장이 다르다.
LTV와 DTI가 각각 70%와 60%로 완화됐지만 은행은 이를 규제 한도 단일화로 받아들여 대출 한도를 차등화해 산정하고 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 임원들을 불러 정부의 취지대로 LTV와 DTI를 운용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같은 실정을 두고 은행의 꼼수나 보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정부가 대출 규제완화나 기술금융 정책 등을 마련하면서 돈을 빌려주는 쪽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검증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책에 협조하라고 은행에 압박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고통과 손실을 함께 부담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