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9주년 신냉전 시대 도래] 이념 대립에서 패권 다툼으로

2014-08-1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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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개최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 출처: CNN 동영상 캡쳐]


아주경제 이광효 기자=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국제질서를 주도했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끝난 지도 20년이 넘은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신냉전 시대의 도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ㆍ소 냉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에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상대국을 파멸시킬 수 있는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ㆍ소 냉전으로 두 진영 사이의 긴장은 매우 높았지만 그것이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로 악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신냉전은 이념 대립이 아닌 패권 다툼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군사적 충돌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과거 냉전보다 더 큰 위험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픽=김효곤기자 hyogoncap@]


▲경제전쟁으로 확산되는 서방-러시아 충돌, 세계 경제에도 타격 우려

현재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초래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미국 등 서방국들과 소련이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와의 충돌이다.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같은 반(反)파시스트 연합국으로서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 등 강력한 공동의 적들을 쳐부수기 위해 협력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냉전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 냉전은 1990년대 들어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로 종식됐다.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고 냉전은 오래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국들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세계는 냉전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난해 11월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등과의 경제 관계 발전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준비를 잠정 중단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야권의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고 결국 이는 올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크라이나 야권과 서방국들의 승리, 러시아의 패배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올 3월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로 합병되자 미국 등 서방국들과 러시아와의 갈등은 ‘벼랑 끝 기싸움’으로까지 치달았다.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직후부터 미국과 EU는 잇따라 대(對)러시아 제재를 단행했지만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과 EU는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고 러시아도 보복에 나서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국들과 러시아의 대립은 경제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의 보복 조치에 EU와 미국이 다시 추가 제재를 가하면 제재의 악순환 사태가 벌어져 세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는 것.

지난달 29일(현지시간) EU 28개 회원국 대표들은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금융, 방위, 에너지 등 러시아 경제 주요 부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경제 제재안에 합의했다.

합의된 제재안의 주요 내용은 △러시아 정부가 주식의 50% 이상을 보유한 은행은 유럽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을 팔지 못함 △러시아에 대해 무기 금수 조치 취함 △심해 시추, 셰일 가스, 북극 에너지 탐사 기술 등 민간 산업과 군사 부문에 동시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의 러시아 수출 금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까지 EU는 러시아와 크림자치공화국의 개인과 기업 등에 대해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중단 조치 등은 취했지만 직접적으로 경제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날 러시아의 에너지, 방위, 금융 분야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의 불법행위를 지지하는 기업 등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일 것”이라며 “에너지 분야 관련 특정 품목과 기술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고 은행과 방위산업체로 제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신용공여 제공 및 금융 지원도 공식 중단한다”고 덧붙였다.

EU 전문매체인 'EU 옵서버'는 “새 제재로 러시아 경제는 올해 230억 유로(약 31조6500억원), 내년 750억 유로(약 103조20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올해와 내년 러시아 전체 국내총생산(GDP) 전망치의 각각 1.5%, 4.8%에 해당한다.

이에 러시아는 제재국산(産) 농산물 등의 수입 금지로 반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 “러시아 개인·법인에 경제 제재를 가했거나 동참한 국가에서 생산된 농산품, 원료, 식품의 수입을 1년 동안 금지·제한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7일 내각회의에서 EU, 미국,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등에서 생산된 일련의 식품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는 정부령에 서명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소고기, 돼지고기, 과일·채소, 닭고기, 생선, 치즈, 우유, 유제품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키로 했다”며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방 동료들이 제재는 막다른 길로 가는 조치로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음을 깨닫길 기대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우크라이나 여객기들이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등으로 가기 위해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것을 금지키로 했다. 유사한 조치가 EU와 미국 항공사들에 대해서도 취해질 수 있다”며 “항공, 조선, 자동차 산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보호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서방 제재가 확대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러시아 정부는 금수 조치 목록에 포함된 국가들을 대신할 우선 대체 공급국들을 선정하는 등 후속 조치도 서두르고 있다.

니콜라이 페도로프 농업부 장관은 9일 자국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과일과 채소 공급이 유력한 국가는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등이고 터키, 이란, 세르비아 등도 고려되고 있다”며 “러시아로부터 곡물, 식용유 등의 수입을 원하는 이란, 모로코, 이집트 등도 매우 유력한 과일·채소 공급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에콰도르, 페루 등의 남미 국가들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며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상품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줄을 섰고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EU와 미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모스크바 주재 EU 대사 비가우다스 우샤츠카스는 7일 “수입 금지 조치는 러시아의 명성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어긋난다”며 “러시아를 상대로 WTO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EU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일반 소비자들도 피해를 볼 것이다. 러시아 식품 수입의 40%가 EU산”이라고 말했다.

EU는 남미 국가들에 농산물을 러시아에 수출하지 말 것을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로 EU는 120억 유로(약 16조6000억원) 정도의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경제의 발을 묶고 러시아 국민이 식품을 구할 기본 권리마저 부정하고 있다”며 “그(푸틴 대통령)의 행동으로 러시아인들이 고통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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