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장윤정 기자 = 국내 1위 보안업체인 안랩의 해외사업이 부진합니다.
안랩이 올해 1분기에 실적을 다소 만회하긴 했지만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안랩 실적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우선 해외 법인들이 실적을 계속 깎아먹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일본법인도 4억원 가량의 순손실이 발생했습니다.
한때 안랩이 일본에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0년 초반 안랩이 안철수연구소 시절이었을 때 한국이 초고속인터넷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인터넷이 빠른 나라 한국에서 온 빠른 보안백신’이라는 캐치플레이로 일본 내 파트너들이 V3백신을 가져다 영업했습니다. 당시에는 제법 쏠쏠하게 잘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일본이나 한국이나 인터넷 속도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일본의 인터넷속도도 빨라지며 이같은 캐치플레이가 먹히지 않게 됐고, 일본 자스닥에 등록하고 미국에 연구소를 둔 트렌드마이크로나 글로벌 1위인 시만텍과 같은 해외 백신업체들이 일본 백신 수요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안랩 내부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실적이 나지 않는 안랩의 미국 법인을 정리하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장쪽으로 해외 전략을 다시 꾸리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미국에서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안랩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미국 SW시장의 경우 대형 기업일지라도 회사 대표가 실제 현장에서 발로 뛰며 영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안랩 미국 법인장인 배민 상무는 미국에 거주하지도 않는 상황입니다. 현재 미국법인에 상주하는 안랩 임원급 인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임원급이 해외사업을 챙긴다고 해서 실적이 반드시 나아지리란 법도 없습니다. 지난해 연말 사임한 김홍선 전 대표가 해외사업을 직접 챙기며 돌아다녔지만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해외사업을 직접 챙기겠다며 김 전 대표는 “그 동안 안랩의 해외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것 인정한다. 안랩이 가진 제품을 현지화하는 방식으로 해외시장에 진입했던 게 문제였다. 또한 과거에는 미국과 같은 메이저 시장으로 진입하지 않고 중국, 일본에 들어갔다. 이제 안랩은 진출하려는 시장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해외 사업을 전개한다”고 선언, 미국 지사를 설립하는 등 직접 챙긴 바 있지만 이후에도 안랩의 해외사업은 답보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지사를 설립하든, 주요 파트너사를 선정하든 마케팅이나 경영이 실패하든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성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한 보안 업체 관계자는 “안랩이 해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성능 때문”이라며 “국제보안인증 VB100과 같은 국제 인증시험테스트에서 안랩이 우수한 성능을 입증한다면 자국에 갖고 가서 팔아보겠다고 나서는 업체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랩을 영업하겠다고 나서는 해외업체들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성능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 국내에서도 소문 난 제품은 어떻게든 구해서 써볼 수 있습니다. 체험판, 무료백신 등이 보편화된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써봤는데 잘잡더라, 사용하기 편하더라 이런 소문이 난다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용자들이 먼저 찾기 마련입니다.
국내에서는 창립자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위상으로 인해 공공, 기업 등에서 누구나 백신하면 첫손에 꼽아주지만, 해외에서 안철수의 이름을 모르는데 성능도 뛰어나지 않은 백신을 굳이 써줄 이유가 없다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안랩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진출을 선언해놓고 몇 년 째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난처하다”며 “계속 적자가 나오고 있어 정리가 불가피할 것 같다. 조만간 미국법인을 정리하고 중국 등 동남아 시장쪽으로 해외사업 노선을 전환할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내수만으로 회사의 미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안랩이 해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 성능 개선 등 근본적인 혁신이 시급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