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러 천연가스 계약, 10년 세월을 낚은 중국

2014-05-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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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기다림 끝에 타이밍 잡아내. 경제효익, 우군확보, 미국견제 세토끼 잡아내

지난 21일 상하이에서 중러정상회담장으로 함께 들어가고 있는 밝은 표정의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사진/신화사)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지난 21일 중국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계약이 타결됐다. 2004년 9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천연가스 도입을 논의한 후 10년만의 공급협상 타결이다. 그동안 중러 양국은 수많은 정상회담을 벌여왔고, 그 때마다 에너지관련 장관들끼리의 협상이 진행됐다. 공급협상 최대의 걸림돌은 단연 가격이었다. 중국은 유럽에 대한 공급가격보다 낮은 수준을 요구했고, 러시아는 국제시가를 고집해왔다.

양국의 천연가스 공급협상은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이 수반되야 한다. 막대한 인프라건설투자가 동반되는 만큼 계약기간은 30년이상은 되어야 채산성이 맞다. 한번 정한 가격이 30여년을 지속하기 때문에 불리하게 가격이 책정되면 후세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한다. 정치적인 책임은 고스란히 지도자에게 부과된다. 양측 모두 가격협상에서 양보할 명분이 없었다.

협상시작 당시 양국 모두 느긋했다. 중국은 고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최대의 에너지소비국으로 변모해갔다. 한해 한해 불어나는 에너지 소비량은 중국의 바잉파워를 높인다. 러시아 역시 유럽이라는 든든한 천연가스 소비처가 있었다. 궂이 성급하게 협상을 타결할 필요가 없었다.

양국 협상단은 1년에 두차례 혹은 네차례까지 만나면서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다. 가격협상이 거의 타결됐다는 보도도 여러 차례 났었다. 이와 함께 막판 가격차를 좁히지 못한채 협상이 결렬됐다는 후속보도가 매번 전해졌었다. 두 나라 모두 미국을 ‘미래의 적’으로 삼고 있는 공통점이 있기에, 양국관계는 자석처럼 가까워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가스 가격협상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대규모 자원협상은 국익에 직결되는 만큼, 난이도가 높다. 이같은 기조는 국가지도자가 바뀌고 주무장관이 교체되도 그대로 이어졌다.

◆양보없는 10년 기싸움에 균열발생

그러던 양국의 기싸움에 돌발변수가 생겼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반목이 그것.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중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발의된 러시아 제재안에 기권하면서 암묵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했다. 서방세계는 일제히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중국은 ‘각 당사국들의 냉정’을 주문할 뿐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우연속에 필연이 있다”며 러시아를 두둔했다. 덕분에 러시아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모양새를 빗겨갈 수 있었다.

지난 3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세계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모색했고, 그 중 하나가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물량 축소였다. 천연가스와 석유수출로 대부분의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새로운 천연가스 매출처가 필요했다. 그리고 서방세계에 맞서 쉽사리 깨지지 않을 강한 동맹국도 필요했다. 이 같은 정치적 경제적 수요는 중국과의 천연가스 가격협상에 더욱 큰 유연성을 발휘하게 했다. 중국으로서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천시(天時)를 맞은 셈이었다. 10년을 준비하며 기다린 끝에 중국은 원하는 가격대로 협상을 타결지을 수 있었다.

◆유럽대비 40조원 절감효과

러시아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이 지난 21일 상하이에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8년부터 30년 동안 중국에 연간 380억 ㎥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게 된다. 이는 중국 연간 가스 소비량의 23%, 가스프롬 연간 수출량의 16%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전체 계약 규모는 4000억달러(한화 약 4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러시아측은 정확한 가스 공급가는 사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중러간 계약의 가스 공급량과 계약 금액 등에 대한 발표를 근거로 양측이 1000㎥당 350 달러 선에 합의를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평균 가스 공급가인 1000㎥당 380달러보다 상당히 낮은 것이다. 전체규모로 따지면 유럽에 비해 약 40조원을 절감한 효과다. 중국은 결국 10년전 협상테이블에 앉았을 때의 목표였던 국제시세인 400달러선은 물론, 유럽 공급가격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10년간의 협상을 결론지었다. 이는 또한 상대국인 러시아의 불만이 없는 ‘양국의 윈윈’이었다.
 

지난 21일 중러간 천연가스공급협상 타결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사진/신화사)



◆중러 밀월 깊어져, 곤혹스러운 미국

중러 양국은 이를 위해 2018년까지 4년 안에 별도로 750억 달러를 들여 천연가스 공급에 필요한 파이프라인과 기간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번에 타결된 380억㎥의 물량은 동부노선을 통해 중국에 공급된다. 동부 노선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중국 동북 지역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이며 서부 노선은 서부 시베리아의 알타이 지역으로부터 중국 서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일컫는다. 이번 계약과 별도로 중러 양국은 서부노선에 대한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다. 양국의 밀월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일 방중에 앞서 가진 중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의 협력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면서 "이 협력을 양국의 유구한 교류역사 속에서 최고의 협력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20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쌍방 관계와 관련한 중대한 문제에서 고도의 일치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스인홍(時殷弘) 중국 런민대(人民大) 국제관계학 교수는 "앞으로의 천연가스 거래는 '상업 결제를 가장한 중국의 러시아 재정지원 계약'이 될 것"이라며 "협상타결은 두 국가의 우호적인 관계에 확실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러 양국의 밀착은 미국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미국과 지구촌 곳곳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 확보전쟁을 벌여온 중국이 에너지 수출국 러시아와 손을 잡고 미국에 맞대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가 러시아에 대해 돈줄 조이기를 시작한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탈출구와 고객인 중국을 잡은 셈이기 때문이다.

◆중국, 안정성장 발판마련

중국의 에너지 수급 불안도 이번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으로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2000년 미국의 절반에 그쳤으나, 2009년에는 미국을 추월해 전 세계 최다 에너지 사용국으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원유 수입 1위 국가로 올라섰다. 중국이 지난해 생산한 원유량은 하루 420만 배럴에 그친 반면 원유 사용량은 하루 1010만 배럴을 기록했다. 현재 개발이 진행중인 셰일가스와 천연가스는 대부분 서부 산간지역에 묻혀있어 개발이 쉽지 않다.

게다가 중국은 정세가 불안한 국가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는 약점도 있다. 중국은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페르시아만(걸프지역) 산유국들로부터 들여오고 있으나, 이곳은 미국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인 데다 대이란 경제제재 조치에 따라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이라크와 오만, 아랍에미리트, 앙골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중동·아프리카·남미 국가들과 원유 수입선을 확대하고 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석탄 대신 천연가스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스모그 등 환경개선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짐 크래인 미 라이스대 에너지 전문가는 "중국인들은 오염된 스모그 없이 산업화를 진행할 수 있고, 세계는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 감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일본에는 악재

러시아는 향후 아시아 지역으로의 가스 공급을 확대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 참석 중인 빅토르 주프코프 가스프롬 이사회 의장은 이날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베트남, 일본, 중국, 한국 등으로 가스공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이 자리에서 “러시아는 동쪽으로 가스공급처를 다양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 극동으로부터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을 건설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도입하려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대형 판로를 확보한 만큼 러시아는 한국과 협상에서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처지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양국간 천연가스 공급과 협력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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