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용갱부터 실크로드 시작점까지" 중국 천년고도 시안

2014-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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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의 100년을 보려면 상하이로, 1000년을 보려면 베이징으로, 2000년을 보려면 시안으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시안(西安)은 천년고도(古都)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산시성 시안은 서주(西周), 진(秦), 전한(前漢), 신(新), 서진(西晋), 전조(前趙), 전진(前秦), 후진(後秦), 하국(夏國),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唐)까지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진시황릉 병마용갱, 장안성, 실크로드 유적 등 서안 곳곳에는 중국 수천 년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있다. 도시 전체가 중국 역사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시안성곽, “도심 한복판의 야외 역사박물관”
 

중국 시안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시안성곽 남문 영녕문.

중국 시안 도심 한복판에는 고풍스러운 거대한 성곽이 있다. 바로 시안성곽이다. 당나라 성곽을 기초로 하여 명나라 때 다시 만들어졌다. 가장 바깥에 해자가 있고 이중문 형식으로 돼 있는 ‘수비형 요새’다. 동서로 2.6km․남북으로 4.2km로 성벽둘레가 13.6km에 달하니 자전거로 성곽 한 바퀴 둘러보는 데도 한 시간 이상이 넘게 걸린다. 본래 당나라 장안(과거 시안 명칭)성은 이보다 7배는 족히 컸다고 전해지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시안성곽. 넓이가 약 15m로 4차선 도로만큼 넓다. 자전거를 타고 성곽을 한바퀴 둘러보는 주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남문 영녕문 윗부분 성곽 넓이가 15m로 4차선 도로를 만들어도 될수있을만큼 넓다. 특히 저녁이 되면 형색색색의 조명들이 성곽과 어우러져 오색찬란한 빛을 자아내 아름다운 야경을 뽐낸다.

▲ 대안탑, “삼장법사 혼이 깃들다”
 

저 멀리 오른편에 보이는 7층짜리 탑이 바로 대안탑이다.

대안탑(大雁塔)은 당나라 고종(高宗) 때 건립된 4각형의 누각식 탑이며, 명나라 때 외벽에 한 겹의 벽돌을 더 둘러쌓았다. 모두 7층이며, 전체 높이는 64m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시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특히 대안탑은 중국 고전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한 뒤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주변을 대형 공원으로 조성해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잡았다. 야관 경관 조명도 아름답게 꾸며놓아 밤에 특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 회교도 거리, “실크로드 상인의 후손들”
 

중국 회교도 거리 곳곳에서 흰모자를 쓴 회교도 남성이나 두건을 둘러쓴 회교도 여성을 볼 수 있다.

시안은 실크로드의 기점이다. 시안에서 실크로드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은 바로 ‘회교도 거리(무슬림거리)’다. 당나라 때 서역과 교류 당시 후손들이 모여 살면서 조성됐다. 이곳에 가면 흰 모자를 쓰거나 두건을 두른 회족들이 양꼬치, 해산물 꼬치는 물론 뱡뱡면, 러우자모, 양러우파오모 등 산시성 특색 음식과 호두, 곶감 등 각종 먹거리를 판다. 이슬람 글씨도 곳곳에 눈에 띄어 이국적 느낌을 자아낸다.

▲실크로드 기념 조각상 “시안의 랜드마크”
 

중국 시안 실크로드 시작점 기념 조각상. 당나라때 실크로드를 오가던 행상인과 짐을 실은 낙타와 말을 형상화했다.

지난 1987년 고대유럽으로 통하는 무역로인 실크로드 형성 2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실크로드 시작된 지점에 실크로드 행상 조각상(絲路群雕)을 만들었다. ‘비단길’이라고 일컫는 실크로드는 2100년 전 중국의 장건(張騫)이 개척한 고대 동서양 교역로를 뜻한다. 총 길이가 6400㎞로 중국 중원지방에서 시작돼 중앙아시아,이란, 유럽까지 이어진 비단 무역 통로다.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신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을 언급하면서 신실크로드 경제벨트가 부상하는 가운데 실크로드 행상 조각상은 시안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당시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단을 형상화한 것으로 3명의 중국인과 3명의 페르시아인, 낙타 14마리, 말 2마리, 개 3마리가 조각돼 있다.

▲ 병마용갱 “진시황의 지하군단”
 

중국 시안 진시황릉 병마용갱 1호갱. 1~3호갱 중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나라 시황제가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병마용갱은 병마도용을 수장한 지하갱도다. 세계8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자랑한다.
 

중국 시안 진시황릉 병마용갱 내부 도용의 모습. 173~198cm 실물크기로 제작됐다.

린퉁현(臨潼縣) 진시황릉원 동쪽 담에서 1㎞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병마용은 1974년 중국 서안 외곽의 시골마을에서 우물을 파기 위해 땅을 파던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산시성 고고학발굴팀이 197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총면적 25,380m2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돼 그 현재 1,2,3호갱이 대중에 개방돼있다.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은 1호갱은 길이 210m, 너비 60m, 깊이 4.5~6.5m의 총면적 12,000m2으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도용의 크기는 1.75~1.96m로 실제 병사 실물크기와 흡사하며 도용마다 얼굴 표정이 각각 다르다. 매장된 전체 도용은 약 600개로 추정된다. 이후 잇따라 3호갱과 4호갱도 발견됐으나 아직 제대로 발굴되지는 않고 있다.

도용들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병마용은 모두 화려하게 채색돼있었으나 발굴과정에서 햇빛에 노출되자 불과 몇 시간만에 모두 색이 바래버려 중국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향후 원형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춰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한양릉, “진시황릉과 대비되지만…”
 

중국 시안 한양릉에사 발굴된 토용들. 200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걸치고 있던 화려한 옷과 나무로 만든 팔이 썩어 없어지면서 지금은 팔이 없는 나신 상태로 남아있다.


한나라 황제들 무덤군 끝에 위치한 전한(前漢) 제4대 황제 경제(景帝)의 무덤 양릉(陽陵)을 한양릉(漢陽陵)이라 일컫는다. 2003년 개관한 한양릉박물관에서 관광객들은 지하 6~11m 아래 무덤 내부를 유리로 된 통로를 통해 발굴 당시 그대로 보존된 부장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무사, 시녀, 환관, 동물 등 약 60㎝ 크기의 다양한 도용이 포함돼 한나라 시대의 특색 있는 매장풍습을 보여준다. 진시황 병마용갱과 달리 한양릉 토용은 실물 크기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으며, 약 60센티미터이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양팔이 없다. 이는 토용이 만들어졌을 당시 화려한 옷을 입고 팔 부분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목재와 의복은 썩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 대당부용원, “천여년전 당나라 문화가 눈앞에”
 

당나라 시대 양식문화를 재현한 문화테마파크 대당부용원의 자운각 전경.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은 중국 정부가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성당 시대의 웅장한 황실의 풍모를 그대로 재현해 높은 문화테마파크다. 중국당국은 건설을 위해 13억 위안을 투자한 이 문화테마파크는 현재 중국 관광지 중 가장 높은 등급인 5A급 유적지로 랭크돼있다. 면적이 60만 ㎡로 관람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넒다. 메인건물인 자운루(紫云樓)를 비롯해 사녀관(仕女館), 어연궁(御宴宮) 등 여러 경승지가 있다. 부용원은 황실정원으로 당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던 곳이다. ‘부용’은 본래 꽃 이름이지만 양귀비와 같은 아름다운 미인을 뜻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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