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재난 공화국에 다름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에 노출이 돼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남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사건이 여전히 진행중임에도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를 비롯해 가로수길 건물 붕괴와 합정역 화재, 포스코와 LS니꼬동제련 폭발사고 등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렇듯 계속된 재난 상황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잇달아 붕괴되며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1990년대 중반과 다름이 없다. 하루하루 일하며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하다.
참사가 터진 직후 잠시뿐이지만 정부는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대응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한다. 산업현장에서도 안전설비 및 관리체계에 대한 전면 재점검에 나서며 안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충분히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무엇인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모두들 잊고 마는게 현실이다.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사상 처음으로 입주사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화재 대피 훈련이 실시됐다. 화재가 발생했단 안내방송이 나오고 전 층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빌딩 안에 있던 직원들 가운데 대피 훈련에 참여한 사람은 4분의 1 정도인 2000여명 이었다. 이곳에 있는 직원은 약 9000명. 안전 불감증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도 전화 통화를 하거나 옆 사람과 훈련 상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등 진지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안으로부터의 위기는 진짜 무서운 일이다. '설마'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물론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한다. 10년, 20년이 흘러 또 다른 삼풍백화점, 세월호가 나타나지는 말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