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어른들의 잔머리로 장독대값, 물값, 책임 소재 따지며 시간 낭비하다가 정작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꼬마도 알고 있었던 염일방일(더 귀한 것을 얻으려면 덜 귀한 것은 버려야 한다)의 지혜를 어른들은 왜 몰랐을까?”
수백 명을 수장시킨 원인 제공자는 희생자 수만큼이나 많다. 초보 항해사에게 배를 맡기고는 위기의 순간이 닥치자 나부터 살고 보자며 승객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배에서 뛰어내린 선장. 탑승자 숫자는 물론 적재화물의 개수와 중량도 기록하지 않았던 선사. 엄청난 참사 앞에서 탑승객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한 구조 당국.
그런데 어느 하나 나서서 돌멩이 던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감옥살이를 줄이겠다며 선원들과 입을 맞춘 것 같은 선장, 승객을 구조하다 사망한 승무원의 장례비 지급을 거부하는 선사,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며 발 빼는 청와대, 이 와중에서 예산 타령만 하는 당국에 참사를 기회로 삼고 자기 진영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들까지…돌아가는 형국을 보자면 눈과 귀가 의심될 정도다.
압권은 사태 수습에 가장 선봉에 서야 할 총리가 국면 전환을 꾀하며 사퇴를 표명한 것이다.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12일째인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 발생 전 예방에서부터 초동 대응과 수습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제때 처리 못 한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며 “가족을 잃은 비통함과 유가족 아픔과 국민 여러분의 슬픔과 분노를 보면서 국무총리로서 응당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사퇴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짠듯이, 사고 수습 후 사표를 수리하겠노라 응답했다.
정홍원 총리로 말할 것 같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은 정부에서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라고 일갈하자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아직 114명의 실종자가 차디찬 바다에 있는데 사태 수습보다 민심 수습에 급급한 모양새를 보자니 무능력한 줄만 알았는데 무책임까지하다.
제 새끼를 바다에서 꺼내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를 용서 못하고 있는 희생자 부모에게 용서까지 구하는 용기가 가상할 정도다. 이것이 책임지는 행동이라고 여기는 총리의 말과 모든 세월호 희생자를 포기하는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이는 민심과의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니 정반대의 민심 수습책을 내놓는 것일 테다.
서해훼리호 참사 20여년이 지났는데 누구도 소 잃은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아무도 돌을 들어 독을 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