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없다’에서 철이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계절을 말하는 것이고 계절도 모르고 옳고 그름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린 아이 같은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부르는 말이다. 참 요즘 어른들이 철이 없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아직은 어두운 이른 새벽, 무거운 마음으로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차갑고 깜깜한 물속에 우리 아이가 있다. 수백 명의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춥고 공포에 질렸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빠르게 기울어가던 세월호 안에 갇힌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가족에게 보냈을 마지막 메시지들, 그리고 학생들을 구하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새내기 교사들, 그리고 절박한 순간 속에서도 서로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다른 친구들을 구하려다가 선실을 빠져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참 많이 울었다.
어른을 믿는 그 착하고 착한 순진함이 우리 아이들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욱더 마음을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무력한 어른들, 책임지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배에 갇힌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들을 누가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구해주지 못한 이 못난 어른이 죄인이고, 이렇게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을 맡기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문득 얼마 전 부산에서 만났던 한 사회복지시설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실은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무책임함으로 저마다 가슴 한편에 아픈 상처를 마음에 지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 전시를 둘러보며 자신이 본 작품들에 대해 어색하고 서투르지만 자유롭게 감상평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 뒤에 있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과 고민에 한참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도망 선장'과 우왕좌왕 정부모습에 자괴감도 든다. 가슴찢어지는 부모들의 울음과 애원에 절로 눈물이 난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사망자 수는 답답하기만 하다. 바다앞에 있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가슴졸이고 있다.
후진국같은 우리나라탓도 말자. 이번 사고는 우리 어른들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냉철한 반성으로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사고후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화창한 봄날이 또 됐다. 날씨도 야속하다. 희망 고문도 좋다. 기적은 분명 있다. 기적의 기적을 기원한다. 꼭 살아서 돌아와라. 제발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