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의 수원지 수질합격률은 50%도 안 되고, 노후한 도시수도관을 타고 가정에까지 도달한 수돗물을 직접 마실수 있는 도시는 단 한 곳도 없다."
중국질병예방관리센터에서 10년 간 일했다는 전문가가 익명을 전제로 지난해 중국 경제주간지 징지저우칸(經濟周刊)을 통해 밝힌 폭로다. 공식적으로 수원지 수질 합격률에 대해 중국 위생부는 지난해 76.5%, 수리부와 주택건설부는 70%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이에 훨씬 못미친다는 것이다.
중국 환경보호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도시 지하수 가운데 57%가 오염돼 수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환경부는 조사 대상 규모나 시기 등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장리쥔(張力軍) 환경보호부 부부장 역시 "농민 2억9800만 명이 마시는 물이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상태이고, 도시민들을 위한 수원지 20%가 수질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2009년 현(縣·한국의 군 해당)급 이상 지역에 있는 4457곳의 수돗물 처리장에 대해 벌인 조사에서는 조사대상 가운데 58.2%만이 각종 마시는 물 기준을 모두 통과했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이 사실은 그동안 비밀로 유지되다가 지난해 시사주간지 신세기(新世紀)를 통해 보도됐다. 이같은 보도에 중국인들은 놀라워하지 않는다. 이미 중국인들은 수돗물을 믿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 가격이 저렴한 생수를 마시거나 정수기로 한번 걸러진 물을 마신다. 아무리 가난한 인민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수돗물을 끓여서 마신다. 직접 마시는 경우는 그야말로 보기 힘들다. 그정도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같은 불신을 배경으로 중국의 정수기 시장이 급성장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시장조사업체 중이캉(中怡康)은 지난해 중국의 정수 설비 판매량이 전년 대비 57.5% 늘어난 428만대, 매출액은 180억 위안(약 3조1318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중이캉은 오는 2020년까지 중국의 정수기시장은 연 4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시장 규모는 1000억 위안(17조원)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제 막 태동하는 시장
중국질병예방공제센터 환경건강제품 안전연구소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의 정수기 보급률이 90%가 넘고, 일본도 70%에 달하지만 중국은 현재 2%에 불과해 앞으로 시장 발전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중이캉은 중국 내 가정용 정수기 보급률을 10% 미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이캉은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가정 정수기 보급률은 15% 미만이나 일반 중·소도시는 5%에도 미치지 못하고 농촌은 거의 공백상태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산업수준이 낮아 품질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지난 1월 중국품질인증센터(CQC)는 ‘가정용 또는 유사용도의 정수기 안전 및 성능 인증사업 규정’을 발표해 시행키로 했다. 인증사업은 ‘가정용 또는 유사용도의 역삼투 정수기’, ‘가정용 또는 유사용도의 한외여과 정수기’의 산업표준을 새로 지정해 인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을 부여할 뿐 기준에 미달하는 정수기제품에 대한 제재조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일정한 계도기간을 거친 후 제재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정수기 생산업체는 300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1200개의 업체만이 위생부의 승인을 받았다. 위생부 승인을 받은 1200개의 업체중에서도 영세한 업체가 많아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정수기가 태반일 것이라는 게 업계관계자의 반응이다. 브랜드별 정수기 제품 간 품질 격차가 크며, A/S도 상당히 낙후된 상황이다. 또한 소비자들의 정수기에 대한 인식도도 낮다. 중국가전협회 조사에 따르면 정수기 사용자 중 24%가 여과필터를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동일한 필터로 1년~2년여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2차오염을 초래하며,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킨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인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구매력 역시 커지고 있는 만큼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정수기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장진출 업체 속속 이어져
이에 따라 정수기업체는 물론 소형가전업체들은 정수기를 전략제품으로 삼고 시장공략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LG전자를 비롯해 A.O.스미스, 메이디(美的), TCL, 안지얼(安吉尔), 친위안(沁園) 등 업체들의 시장공략이 특히 두드러진다. 특히 중국의 많은 수출형 가전기업들이 이제는 중국 내수시장을 목표로 공기정화기, 정수기 판매 활로를 적극적으로 개척 중이다.
우리나라의 LG전자도 정수기시장을 조준하고 있다. 지난 1월 21일 중국가정용전기협회과 지역매체인 '베이징중소기업'이 베이징에서 공동 주최한 제1기 중국 수처리제품 소비자 조사발표회에서 LG전자의 제품이 2012~2013년 중국 정수기 정수효과 우수제품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자리에서 단후이더(單惠德) LG전자 총감은 "올해를 정수기 분야 시장점유율 제고 원년으로 보고 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토종 TV생산업체로 유명한 TCL도 지난 2010년 정수산업에 진출했으며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0~30%에 달했다. 특히 TCL은 정수기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미국의 정수기업체인 펜테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TCL 정수기 제품은 간편한 원터치 여과필터를 핵심기술로 하고 있다. 이 필터는 손으로 손쉽게 회전시키면 교체가 된다. 이밖에도 RO막 여과필터를 도입해 역삼투 기술을 통한 더욱 정밀한 정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각 업체들은 중국의 대도시인 1.2선 도시와 함께 보급률 1%미만의 3, 4선 도시도 함께 공략하고 있다. 3•4선 도시의 구매력이 크게 늘면서 이들 지역에서도 정수기 시장의 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제품차별화 업체가 1위달려
2013년 중국정수기협회, 중국품질감독국, 국가브랜드발전위원회, 포브스, 상하이푸싱미디어, 맥킨지 등이 공동으로 선정한 중국 정수기 10대 기업에는 중국 로컬기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스티브(STEVOOR), 메이디, 리성(立升), 취안라이(泉來), 안지얼 등이 주요업체로 선정됐으며, 한국업체는 순위에 들지 못했다. 10대 기업 선별조건으로는 등록자본금 500만 위안 이상, 자체기술 생산라인 보유, 유통체인 구비 등이었다.
1위에 선정된 스티브(斯帝沃)그룹은 영국의 고급 정수기 브랜드다. 중국 내에서 처음으로 RO막 기술을 선보이면서 부유층을 대상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 정수기업체에 핵심기술과 원자재를 공급하기도 하며, 지역별로 차별화된 정수 솔루션을 제공해 소비자에게 높은 만족도를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업체가 중국에 진출한 것은 2003년 홍콩에 최초 전문점 설립하면서부터다. 2010년부터 중국 정수기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2011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중국내 고급 정수기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했다.
2위인 중국의 '메이디청호'는 메이디와 우리나라의 청호나이스가 합자해 만든 회사다. 메이디는 2001년 정수기산업에 뛰어들었으며 2006년 청호나이스와 합작을 했다. 미국 다우그룹의 중국 전략파트너이기도 하다. 역삼투정수기 제품이 주력 제품이며 메이디의 토종기업으로서의 촘촘한 유통망이 강점이다. 3위에 선정된 리셩은 하이난성에 세계 최대 필터공장을 가동중에 있다. 리성 역시 토종브랜드다. 4위에 오른 취안라이 역시 로컬브랜드로,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은 편이다.
안지얼그룹 역시 공기청정기와 정수기분야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로컬업체며, 6위인 하오저(浩澤)는 상하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산시(陝西), 간쑤, 신장, 네이멍, 닝샤, 산시, 시닝 시장에 재빨리 진출해 있는 것이 강점이다. 7위에 오른 양즈(揚子)는 태양광온수기, 정수설비, 가정용 전기 등을 취급하는 국유기업이다. 아이누(愛奴)는 가정용 정수기를 비롯해 중앙정수기, 수처리설비 및 부품을 취급하고 있으며 9위 미양(米揚)은 정수기 OEM 및 수출 기업으로 시작해 내수기업으로 변신한 업체다. 10위인 이커우(怡口, 에코)정수기는 미국 브랜드다. 전세계적으로 순위가 5위권 내에 들지만 중국에서는 아직 그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